그 동안 모아두었던 동전과 통장을 가지고 외환은행엘 갔다. 동전을 은행에 가지고 가려면 통장을 함께 가지고가서 통장에 입금을 시켜야 바꾸어주지 그렇지 않으면 바꾸어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다. 번호표를 뽑고 상당히 긴 시간을 기다려 차례가 왔기에 창구로 가서 통장과 동전을 내 밀었다. 은행직원이 지금은 바꾸어 넣을 수 없단다. 오후에 세어서 무통장입금을 시켜준다고 하면서 통장 번호와 전화번호만 적어놓고 가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동전을 세는 기계가 한 대 밖에 없는데 지금은 바빠서 안 되고 오후에 종류를 가려서 세야 한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맡겨놓고 갔단다. 은행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마음속으로 께름칙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세어서 액수나 기억을 해둘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동전봉지를 다시 들고 올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두고 왔다. 믿을 수밖에.
오후에 통장정리를 해보니 칠만 육천 삼백 원이 들어와 있다. 아마도 맞게 세어서 집어넣었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못 믿을 일이 많다고 그런 걸 다 찜찜해 하다니 내 마음이 원망스럽다. 큰돈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지 않아야지 하는 내 마음을 내가 못 믿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가 잘 주어가지도 않는 동전 몇 개에 잠시나마 신경을 쓴 내 마음이 한 없이 못나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원망스러웠다.
사실 십 원짜리 동전은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가 주어가지도 않는다. 얼마 전 십 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은행에 바꾸러갔더니 녹이 좀 났다고 깨끗이 씻어서 말려가지고 오라고 한 일도 있었다. 십 원짜리 동전을 만들려면 삼십 원이 든다고 한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지금 십 원 동전을 쓰는 데가 얼마나 있을까. 우표도 삼백 원이다. 차비도 백 원 단위다. 문구점에 가도 십 원 단위 물건은 없다. 단지 세금이나 이자 끝이나 십 원이 붙어있는 실정이다. 거기에다 지금은 현금의 시대라기보다는 카드의 시대다. 계산상으로 필요한 액면금액이다. 사사오입해도 상관이 없을 금액의 액수다.
이제는 십 원 동전은 없애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십 원의 가치를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는 현실에서 제작비용만 어마어마하게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만 원 권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오만 원 권이 나오지 않았을 때도 십 원의 필요성은 별로 없었는데 오만 원 권이 흔하게 오고가는 세상에 십 원을 왜 못 없애는지 국가가 판단할 일이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래도 국가에서는 못 없애는 이유가 있겠지. 이런 일을 두고 동전의 양면성이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을 다루는 은행에서조차 푸대접을 받는 동전. 돈이 귀하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보면 돈이 꼭 귀한 것만도 아닌 듯도 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의 마음도 아마 십 원짜리 동전보다 못한 생각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쩐지 한 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