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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고치며

정하선 2014. 10. 19. 21:34

 

우산을 고치며

 

 

 

 

 

가을비가 온다.

우산을 쓰고 오는데 위 꼭지 쪽 철사가 터져서 헐렁거렸다.

산지 얼마 안 된 것을 아이들이 쓰고 왔다가 두고 간 우산이다.

 

 

 

가게에 와서 보니 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끊어진 철사를 빼내고 다시 철사를 살구멍에 꿰어서 홈에 넣고 조이려 하는데 잘 안되고 어려웠다. 몇 번씩 해도 안 되는 걸 보면서 아내가 옆에서 버리고 새것을 쓰지 그러냐고 하였다.

몇 번을 하다가 안 되겠다 하고 포기할 가 하는데 갑자기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위쪽 꼭지를 빼내고 하면 될 것 같았다.

위쪽 꼭지를 빼내고 하니까 금방 되었다.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을.

아내가 옆에서 관절염으로 아픈 다리를 만지면서 내 다리도 저렇게 고쳐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우산처럼 아내의 다리도 내가 고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쳐주련만.

 

 

 

집에는 우산이 많이 있다. 거의가 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우산이다. 주로 행사장이나 고희 기념식에서 받아온 것들이다.

아이들이 와서 이렇게 새 우산이 많은데 왜 헌 우산을 쓰고 다니세요, 할 때마다 너희들 비올 때 왔다가 비 온다고 안가면 쫓아 보내려고 그런다. 하고 웃는다.

아이들보고 가져다 쓰라고 해도 안 가져간다.

 

 

 

육칠년 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산 우산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살이 부러지면 헌 살로 덮어씌우고 살을 맨 철사가 끊어지면 빼내고 새 철사로 갈아서 사용하였다.

나는 나쁜 습관인지 좋은 습관인지 모르지만 고칠 곳이 여러 곳이라 이제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한다.

 

 

 

가게에는 헌 우산이 여러 개 있다. 갑자기 비가 오면 고객들에게 쓰고 가시라고 주기 위해서 놓아둔 것이다. 쓰고 갔다가 다시 가져오기도 하지만 잊고 안 가져오시는 분도 있다. 가져오지 않아도 헌 우산이라 상관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산을 고쳐주는 사람들이 가끔 신문기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온뒤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는 버린 우산들을 의례 두서너 개씩을 볼 수 있다.

물건이 이렇게 흘러넘치는 시대에 나는 왜 우산을 고치고 또 고쳐서 쓰는 궁색함을 떨고 있는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버릇은 못 버린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어렸을 적 물자가 귀할 때 고쳐 쓰던 버릇이 지금까지 몸에 배서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된 것 같다.

 

 

우산을 고치고 나면 고쳤구나 하는 만족감도 있다.

이젠 버려야지 하면서도 고장이 나면 버리지 못하는 버릇을 난 못 버리고 평생을 가져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