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선 2015. 2. 9. 08:08

쭈꾸미

           정하선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남정리 바다 258번지

비어있는 집 한 채 소라껍질에 신혼을 꽂아놓고

가구 같은 것은 없어도 좋았다

담아두어야 할 물개털외투도

감추어두어야 할 진주반지도 없어

 

꽃게처럼 화려한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도

날치처럼 물위로 힘차게 날아본 적이 없어도

산호숲에 별장을 가져본 적이 없어도

 

기름진 갯벌을 갈고 다니며 작은 희망을 가꾸다

저녁이면 몸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집이 있다는 걸로 함께 몸을 감싸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신부가 있다는 걸로

 

불가사리 같은 우리의 가슴을 웃음으로 어루만지며

갯바위에 붙어사는 고동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수가 들고날 때마다 기도를 올리며

 

햇빛 반짝이는 물위를 동경해본 일 없어도

햇빛은 맑게 가꾸어놓은 집 주위까지 물을 뚫고 내려와

자개로 장식한 듯 신비로운 빛깔로 우리의 신혼을 감싸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