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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펑에서 청청까지

정하선 2015. 4. 4. 08:31

  트래펑에서 청청까지

 

                               정하선

트래펑

한 병 주세요

 

내 마음 속 꽉 막혀버린

소장대장을 뚫어야 해요

지금 내 입안은 오물이 가득 차

장화 신고도 들어갈 수 없어요

구역질이 저절로 나와요

 

빳빳한 철사줄에 구호를 감아서

팔뚝에 힘줄 세워 쑤셔도 보았어요

새파란 이념을 마디마디 쪼개어

낭창낭창 쑤셔도 보았어요

울음 한 줄금 흥건히 흘려서

떠내려 보내려고 해도 보았어요

 

어린 시절에야 막혔겠어요

살다가 삶의 찌꺼기 쌓이고 쌓여 막혔겠지요

트래펑 거꾸로 세워 발목을 붙들고

내 어린 시절까지 내려가도록

기운차게 흔들어 쏟아 부을게요

 

세상 비취는 햇빛이 환하게 보이도록 뚫리는 날

청청도 한 병 주세요

다시는 막히지 않도록 하늘빛 청청 가득

푸르게 풀어 입안을 맑게 헹구고

별과 달까지 들리도록 노래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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