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횟집 -낙지 -
횟집
- 낙지-
외 2편
정하선
지금은
최고의 접대를 받고 있다
서당에서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았다
뻘밭에 흩어진 글자들을 주어먹었다
머리가 커졌다
먹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가 커졌다
머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몸을 숨겼다
손 마디마디 숨어있는
빨대를 뻗어
피를 빨았다
가끔가다 힘이 겨우면
먹물을 뒤집어 씌웠다
머리와 손아귀만 비대해졌다
가슴은 점점 없어졌다
서당에서 들려왔던 글자들 다 도망갔다
뻘만 남았다 먹물만 남았다
납작 엎드린 광어가 찾아와
이르기를
몸조심 하세요
산채로 난도질당할
개혁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지금은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으니까
눈물
신이 나에게 눈물을 주신 것은
슬플 때 울라고 주신 것도 아니요
감격스러울 때 흘리라고 주신 것도 아니요
눈썹에 눈곱 끼어 세상이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
그 때 말끔히 씻고 보아라고 주신 것이었음을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때 끼어 세상이 맑게 보이지 않을 때
그 때 말끔히 닦고 보아라고 주신 것이었음을
그냥 무심히 지나쳐왔기에 아직은 몰랐을 뿐입니다
세상이 때 묻어 더러울 리야 있겠어요
세상에 먼지 끼면 바람이 털어주고
털어지지 않으면 소나기가 씻어주고
벌레 먹으면 가을이 흔적 없애주고
세상은 항상 새롭게 모양새 갖추는데
세상이 때 묻어 더럽게 보이는 것은
내 가슴에 안개 끼고 내 눈동자에 먼지 끼고
하였을 뿐이었음을 아직은 몰랐을 뿐입니다
내 눈에 들어있는 눈물을 똑바로
아직까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음은
내가 제일 부끄러워해야할 것임을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일조차 없으니
내 눈에 눈물 아직은 내 것이 아닐 뿐입니다
댓잎 배
강둑에 앉아 아카시아 잎 따서 무심코 강물에 던지다
옛날에서 흘러오는 배 한 척
사공도 사랑도 만선의 꿈도 어디로 가고
댓잎 배 한 척, 빈
저 배도 어인 일인지
강둑에 뱃머리 대지 못하고
그냥 흘러서 가네
정하선 시집 (재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