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詩 옥화야
옥화야
외 2편
옥화야
살아있었구나
꼭 그날 같은 오늘
열아홉 소녀시절
같이 피난 오던 길
오십년을 하루하루
눈썹 위에 포개어 얹으며
일흔이 다 되도록
문설주 놓은 적 없는데
kbs아침마당 뜰 가득
눈물로 물 주던 아침
상처 위에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자국 위에
꽃 피었구나 꼭 그 날같이
열아홉 붉디붉은, 함박꽃
백마고지
저렇게 제멋대로 누워 있지 않은가
저렇게 포개어 앉아 있지 않은가
화랑담배연기 아직 자욱한 산골 안개
횃대에 저고리 걸어둔 채 능선에 흰 구름
사랑방에 때 묻은 목침 대신
녹슨 철모 베고 누워
흰 이빨 드러내고 하얗게 웃는 모습
원망은 이미 다 삭아 이끼 너그럽고
뼈와 손 서로 마주 잡은 채
너는 이어도 해녀의 이야기나 하다가
너는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나 하다가
금방이라도 소피 보려가는 척
어린 마누라 기다리는 제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에 욱신거리는 허리 지지고
동트면 두엄 지게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갈, 채비로
끝내 누워버린 고지여, 고지여
그때를
우리 입장을 한 번 바꾸어놓고
생각해볼 수 없겠는가 자네와 나
끝손주 보면 맏손주도 보고 싶은데
한라산 보면 백두산도 보고 싶은데
압록강 보면 영산강 보고 싶지 않던가
금강산이 단풍치마 입으면
남해안 동백꽃이 궁금치도 않던가
이제 와서 뭘 또 어쩌겠다고 우린 서로
못 본 체 모른 체 하고만 있단 말인가
돌린 등 돌려 서로 마주보면서
손과 손을 덥석 마주잡고 두텁게
너털웃음 웃어가며 지난 일 훨훨 털어버리고
밤이 오면 만약에 또 밤이 온다면
횃불 훤히 밝히고 온 세상사람 모두 모인 자리
자네는 꽹과리 치고 나는 북장구 치고
막걸리 사발 서로 주고받으며
내일 일을 의논하던 그때, 다시 그때를
정하선 시집 (재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