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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詩 옥화야

정하선 2020. 4. 2. 21:14

   옥화야

                     외 2편

 

 

 

 

옥화야

살아있었구나

 

 

꼭 그날 같은 오늘

열아홉 소녀시절

같이 피난 오던 길

 

 

오십년을 하루하루

눈썹 위에 포개어 얹으며

일흔이 다 되도록

문설주 놓은 적 없는데

 

 

kbs아침마당 뜰 가득

눈물로 물 주던 아침

상처 위에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자국 위에

 

 

꽃 피었구나 꼭 그 날같이

열아홉 붉디붉은, 함박꽃

 

 

 

    백마고지

 

 

 

저렇게 제멋대로 누워 있지 않은가

저렇게 포개어 앉아 있지 않은가

화랑담배연기 아직 자욱한 산골 안개

횃대에 저고리 걸어둔 채 능선에 흰 구름

사랑방에 때 묻은 목침 대신

녹슨 철모 베고 누워

흰 이빨 드러내고 하얗게 웃는 모습

원망은 이미 다 삭아 이끼 너그럽고

뼈와 손 서로 마주 잡은 채

너는 이어도 해녀의 이야기나 하다가

너는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나 하다가

금방이라도 소피 보려가는 척

어린 마누라 기다리는 제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에 욱신거리는 허리 지지고

동트면 두엄 지게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갈, 채비로

끝내 누워버린 고지여, 고지여

 

 

 

 

    그때를

 

 

 

우리 입장을 한 번 바꾸어놓고

생각해볼 수 없겠는가 자네와 나

끝손주 보면 맏손주도 보고 싶은데

한라산 보면 백두산도 보고 싶은데

압록강 보면 영산강 보고 싶지 않던가

금강산이 단풍치마 입으면

남해안 동백꽃이 궁금치도 않던가

이제 와서 뭘 또 어쩌겠다고 우린 서로

못 본 체 모른 체 하고만 있단 말인가

돌린 등 돌려 서로 마주보면서

손과 손을 덥석 마주잡고 두텁게

너털웃음 웃어가며 지난 일 훨훨 털어버리고

밤이 오면 만약에 또 밤이 온다면

횃불 훤히 밝히고 온 세상사람 모두 모인 자리

자네는 꽹과리 치고 나는 북장구 치고

막걸리 사발 서로 주고받으며

내일 일을 의논하던 그때, 다시 그때를

정하선 시집 (재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