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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정하선 2021. 4. 7. 21:00

백마고지

 

                  정하선

 

 

 

 

 

저렇게 제멋대로 누워 있지 않은가

저렇게 포개어 앉아 있지 않은가

화랑담배연기 아직 자욱한 산골 안개

횃대에 저고리 걸어둔 채 능선에 흰 구름

사랑방에 때 묻은 목침 대신

녹슨 철모 베고 누워

흰 이빨 드러내고 하얗게 웃는 모습

원망은 이미 다 삭아 이끼 너그럽고

뼈와 손 서로 마주 잡은 채

너는 이어도 해녀의 이야기나 하다가

너는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나 하다가

금방이라도 소피 보려가는 척

어린 마누라 기다리는 제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에 욱신거리는 허리 지지고

동트면 두엄 지게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갈, 채비로

끝내 누워버린 고지여, 고지여

 

 

       정하선시집 (재회. 월간문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