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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자판기

정하선 2021. 8. 10. 20:17

 커피자판기

 

                       정하선

 

 

 

 

 

자동시스템을 최첨단산업으로 알고 있는

자본국가인 저 나라에는

하얀 크림과 검은 커피가

제 나름대로 섞이어

 

최첨단기능을 숨긴 파란 눈들이

세계의 시장을 향하여

음모를 감춘 채 유혹의 눈을 빛내며

 

크림의 하얀 가슴과 커피의 검은 성기가 뒤엉키어

뜨겁고 부드러운 흥미와 한때의 감미로움을

때로는 쏟아주기도 하지만

동전을 거두어들인 만큼 인색하게

종이컵 반도 못되는 물량을 쏟아주고

만족한 듯 입을 다물고 말 때도 있어

 

저 나라에 이민 가 한쪽에 끼워 살고 있는

쑥 냄새 나는 내 누나는

그들의 음모를 눈치 채고 있어도

나약함이 자신의 비극임을 속으로 새기며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앉아 있다

맨 가장자리에, 우정이란 명분을 위안으로 삼고

그래도 우리는 커피자판기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1998년 겨울

 

                      정하선시집 (무지개 창살이 있는 감옥. 예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