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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밭에 갔던 날

정하선 2021. 11. 28. 16:27

 

소금밭에 갔던 날

 

                        정하선

 

 

 

넓은 들 끝에 바다가 있다. 들과 바다 사이에 논 몇 배미 정도의 염전이 있다.

소금막이 원시인들의 움집처럼 두서너 개 있다. 장작이 한편에 집채처럼 쌓여있다. 소나무향이 짙게 풍겨와 코에 초록 비단을 깔아준다. 옆에는 바짝 말라서 붉은색이 된 질 좋은 곰솔 나뭇단이 몇 접이나 되는지 산처럼 쌓여있다.

소금막 속으로 들어가면 삼 찌는 솥보다 더 커다란 가마솥이 있다. 가마솥이 어찌나 컸던지 빠지면 죽을 것 같다. 염부들이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증발시킨 짜디짠 물을 큰 가마솥에 넣는다. 장작불을 지핀다. 물을 더 증발시키면 크리스마스 무렵의 눈처럼 고운 꽃소금이 나온다.

동무들과 들 끝머리 하작(들의 아래편)으로 내려간다. 하작에 가면 논두렁에 굴을 파고 사는 풀게 가 있다. 풀게는 논두렁에 쥐구멍 같은 굴을 파고 산다. 참게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참게보다는 몸이 더 두툼하다. 구워 먹으면 풀냄새가 난다. 다리에 털이 많이 나 있는데 집게발은 어찌나 강하든지 놋젓가락을 물면 부러진다고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하작에 주로 많이 산다. 물과 뭍을 오가며 살기에 물과 접해있는 논둑의 하단부에 산다. 게 구멍 입구에 게가 나와 있는 것을 찾아 살금살금 뒤로 가서 대창이나 뾰쪽하게 깎은 나무 작대기를 찔러 퇴로를 막아 굴로 못 들어가게 한 뒤에 잡는다. 집게발에 물리지 않게 등딱지 양쪽을 손으로 잡아야 한다. 맛이 없고 풀냄새가 나기 때문에 게장을 담는다든지 하는 식용으로 잡아먹지는 않았다. 잡아다 불에 구워 먹는 것이 우리들의 어릴 때 놀이 중의 하나였다.

동무들과 함께 하작에 풀게 를 잡으러갔다가 소금밭까지 가게 되었다. 소금밭이 있는 쪽에 풀게 가 많다고 하는 동무 따라 그쪽으로 갔다가 소금밭엘 가게 되었다.

소금밭 구경을 하다 소금밭 일꾼들에게 들켜서 된통 혼이 나 쫓겨 왔다. 소금가마솥에 빠지면 위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어디서 놀다 왔냐고 하기에 소금밭에 가서 놀다 혼나게 쫓겨 왔다고 했더니 할머니 역시 소금밭에 다시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 소금밭에서 혹시 뱀을 볼 수도 있는데, 뱀을 보고 소금밭 주인에게 말을 하면 소금밭에 있는 그 많은 소금을 다 버려야 하므로 소금 값을 다 물어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뱀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큰 죄가 되어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관련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소금밭에는 가지 않는 것이란다.

들에는 뱀이 많았다. 비 온 뒤에는 풀밭 여기저기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뱀이 많아서 소금밭에도 뱀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뒤로 우리들은 소금밭엘 가지 않았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고운 꽃소금을 굽는 염전은 없다. 소금을 보면, 특히나 꽃소금을 보면 그 염전 생각이 떠오른다. 소금밭 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소금꽃처럼, 염전 물 저 밑에 비추어 떠있는 흰 구름처럼 가슴속에 하얀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아니 몇십 년 전에 사라지고 없는 단 한 번 가본 소금밭.

 

 

                             정하선에세이집 (견디며 사는 나무 . 이화문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