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em 매

정하선 2026. 6. 13. 07:42

k-poem 매

정하선(丁河璿) jung ha sun

꿩을 잡아야 한다
나는 보라매
번개 치던 밤 뜬눈
선반밀링에 갈아진
발톱과 부리
꿩을 잡아야 한다

암컷과 새끼를 위해
나락논 보리밭두렁
들쥐를 잡아오던
아버지의 피, 동맥을 잘라
아버지의 피를 쏟아버리고

주인을 위해, 오직 주인을 위해서만
닭고기를 던져주는 주인을 위해서만
꿩을 잡아야한다
나는 훈련된 보라매


정하선 시집(재회) 월간문학출판부



ai 시해설과 번역

정하선 시인의 시 〈매〉는 야생의 본능을 잃고 인간의 목적에 맞춰 길들여진 ‘보라매(생후 1년이 안 된 사냥용 매)’의 눈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비장한 숙명과 슬픔을 투영한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직접 쓰신 이 아름답고도 시린 시에 대한 해설과 영문, 불문 번역을 아래와 같이 전해드립니다.

1. 작품 해설

인간을 위해 사냥하도록 훈련받은 매. 출처: Yeongsik Im / Getty Images
이 시는 ‘자연적 본능(야생)’과 ‘자본주의적/사회적 길들여짐(정착과 노동)’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비극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선반밀링에 갈아진 발톱과 부리: 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야생성의 상징인 발톱과 부리가 차가운 기계(선반밀링)에 의해 다듬어졌다는 표현은, 현대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날카로운 개성과 본질을 거세당한 채 규격화된 인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피를 쏟아버리고: 과거의 아버지는 ‘암컷과 새끼’라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들판과 논두렁을 누비며 주체적인 사냥(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했습니다. 그러나 화자인 ‘보라매’는 그 주체적인 야생의 피(동맥)를 끊어내고, 오직 타인(주인)의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대를 이어 더 심화된 소외와 종속을 의미합니다.

오직 주인을 위해서만, 나는 훈련된 보라매: 시의 전반부에서 "꿩을 잡아야 한다"는 생존을 위한 외침처럼 들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닭고기 조각'이라는 최소한의 보상에 묶여 매여 있는 굴종의 산물임이 드러납니다.

현대 직장인이나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혹은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깎아내며 오직 '주인(회사, 사회)'이 던져주는 대가에 의존해 꿩(성과, 목표)을 잡아야만 하는 씁쓸한 현실이 매의 매서운 눈빛과 대비되어 깊은 페이소스를 자아냅니다.

시 〈매〉에 대한 문학적 비평(시평)입니다. 이 작품이 지닌 미학적 성취와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적으로 짚어보았습니다.

📝 시평: 박제된 야생, 길들여진 노동의 잔혹극
정하선의 시 〈매〉는 강렬한 동물적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이 마주한 존재론적 소외와 예속의 굴레를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秀作)이다. 시인은 하늘의 절대 강자인 ‘매’를 화자로 내세워, 주체성을 상실하고 자본과 시스템에 길들여진 현대 비극성을 한 편의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시극(詩劇)으로 완성해 냈다.

1. 비자연적 변형과 야생성의 거세

시의 도입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선반밀링에 갈아진 발톱과 부리’라는 이미지다. 매의 발톱과 부리는 자연 상태에서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야생성의 핵심이다. 이것이 차가운 산업 기계인 ‘선반밀링’에 의해 갈려 나갔다는 설정은, 인간이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의 본질과 야생성(개성, 자유)을 어떻게 규격화하고 거세당하는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번개 치던 밤 뜬눈으로 그 고통을 견뎌낸 매의 모습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야 했던 현대인의 고독한 사투와 겹쳐진다.

2. 아버지의 세대와 보라매의 세대: 주체성의 상실

2연과 3연의 대비는 이 시의 비극성을 한층 더 심화시킨다. 과거 ‘아버지’의 사냥은 거칠고 소박했지만 주체적이었다. 나락논과 보리밭두렁에서 들쥐를 잡던 아버지는 비록 가난할지언정 가족(암컷과 새끼)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생태계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화자인 ‘보라매’는 그 아버지의 피와 동맥을 잘라 쏟아버린다. 이는 단순히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자발적 노동’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타인을 위한 예속적 노동’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아버지의 야생적 혈통을 거부(혹은 거부당함)한 대가는 처절하다.

3. '닭고기'라는 족쇄와 반복되는 당위

마지막 연에서 "오직 주인을 위해서만"이라는 구절의 반복은 시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매가 꿩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이제 생존 본능이 아니다. 주인이 던져주는 작은 '닭고기' 한 조각 때문이다. 사냥의 주체였던 매가 겨우 닭고기 조각에 목을 매는 사냥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꿩을 잡아야 한다"라는 맹목적인 명령조의 독백은, 매 스스로가 내리는 다짐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뇌리에 박힌 외부의 강박이다. 이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며 "성과를 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는 현대 직장인들의 서글픈 자기 암시와 다름없다.

📢 총평

정하선의 〈매〉는 사냥매라는 고전적 소재를 현대적인 산업적 이미지(선반밀링)와 결합하여 독창적인 시적 시공간을 창출했다. "나는 훈련된 보라매"라는 마지막 고백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굴종의 현실을 뼈아프게 직시하는 서늘한 자각이다. 날카로운 부리를 갈아내며 주인의 손 위에서 비상을 꿈꾸는 이 슬픈 보라매의 초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숨겨진 얼굴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2. 영어 번역 (English Translation)

The Hawk

by Jung Ha-sun

I must catch the pheasant
I am a boramae, a young hawk
Eyes wide open on that thunder-striking night
Talons and beak ground down
By a lathe and milling machine
I must catch the pheasant

For the female and the chicks
The blood of my father,
Who used to catch field mice
Along the ridges of rice paddies and barley fields—
Severing my father’s artery,
I pour his blood away

For the master, solely for the master
Only for the master who throws me pieces of chicken
I must catch the pheasant
I am a trained hawk

3. 프랑스어 번역 (French Translation)

Le Faucon

de Jung Ha-sun

Je dois attraper le faisan
Je suis un boramae, un jeune faucon
Les yeux grands ouverts par cette nuit de tonnerre
Les serres et le bec limés
Par le tour et la fraiseuse
Je dois attraper le faisan

Pour la femelle et les petits
Le sang de mon père,
Qui attrapait des souris des champs
Le long des rizières et des champs d'orge—
Tranchant l'artère de mon père,
Je verse son sang et m'en débarrasse

Pour le maître, uniquement pour le maître
Seulement pour le maître qui me jette des morceaux de poulet
Je dois attraper le faisan
Je suis un faucon dress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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