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옷 한 벌 드립니다
정하선
그 때가 시월 열하루 겨울로 접어드는
추동복 양복 한 벌 체크무늬 옅은 약간 검정색
와이셔츠는 하얀색 혁대는 자동 빗살무늬 넥타이
순면 겨울내의 한 벌 팬티는 사각 메리야스는 긴팔
그리고 양말과 끈 매는 검정구두 한 켤레 코가 반짝이는
정확한 치수를 알 수 없어
허리는 36인치 속옷들은 100호
구두는 265미리 양말은 대충
내가 입은 옷의 크기와 같은 크기로 그냥
고급도 아니고 내가 입은 것보다 조금 더 멋스러워 보이는 걸로
빠진 것 없나 다시 한 번 살피고
깨끗한 종이상자에 담아
나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
오십사 년이 된 아버지의 무덤
양민학살현장에서 죄 없는 죄로
팬티 한 장 겨우 입고 가셨다는
무덤 옆에 옷 한 벌 묻어드리고 오는 길
오리나무 가지에 걸린 두견이 울음이 봄비에 젖고 있다
정하선시집 _재회(월간문학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