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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밭

정하선 2014. 6. 25. 21:51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밭

 

 

 

 

아내의 무릎치료 때문에 병원에 갔다.

진료예약시간이 9시여서 조금 일찍 갔더니 병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병원 앞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리는 곳, 앞에 전주와 가로수 사이 흙이 있고 고추 한 그루를 심어서 가꾸어 놓은 것이 보였다.

주인의 사랑이 느껴질 만큼 고추는 잘 자라고 있었다.

내가 본 밭 중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밭이다.

 

 

화분에 고추를 심거나 빌라나 단독주택 옥상에 조그만 밭을 만들어놓고 채소 등을 심는 것은 많이 보았다.

화분에 고추를 심어놓은 것도 보통 두 그루 정도는 심는다.

하지만 저렇게 작은 밭은 오늘 처음 보았다. 밭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고추를 딱 한 그루 심어놓은 작은 밭 말이다.

삭막한 도시거리에 조그만 액세서리 같아 미관상 좋아 보인다.

 

 

시골에 가면 여러 가지 논이나 밭이 있다.

작은 논이나 밭으로는 삿갓배미가 있다. 삿갓 하나를 덮으면 딱 맞을 만한 작은 논이나 밭이다.

방석배미나 덕석배미도 있다. 방석이나 덕석 하나를 펼친 크기만큼이나 하다는 작은 밭이나 논이다.

보통은 크기를 말할 때 한 되지기나 한 마지기를 쓴다. 한 섬지기도 있다. 열섬지기 기름진 땅도 있다.

 

 

한 되지기는 씨앗을 한 되를 뿌릴 수 있는 밭이나 논이다.

한 마지기는 씨앗을 한 말을 뿌릴 수 있는 밭이나 논이다.

한 섬지기는 씨앗을 한 섬을 뿌릴 수 있는 밭이나 논이다.

되나 말이나 섬은 구두라고 한다. 구두는 옛날에 사용하였던 말이다. 신 두는 한 말이 18L다. 되로는 1.8L을 가리킨다. 구두는 신 두 보다 작은 말이다.

 

그렇게 보면 열 섬지기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땅이 될 것이다. 한 섬지기나 열 섬지기의 단독 땅은 없을 것이다. 그 집 전체 농사를 이를 수 있는 말로 썼을 것이다. 그 집은 열섬지기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 하는 식의 말로 썼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한 마지기를 두고 말씨름을 하는 것을 보았다. 세금을 한 말 가져가는 땅이 한 마지기라고 하는 어른과 소작료가 한 말이라는 어른이 서로 본인 말이 맞은 말이라고 하는 말씨름이었다. 그 때만 해도 수확량이 아주 적은 땅에 소작료나 세금이 너무나 과다한 부담이 되어서 생겨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 마지기는 200평이나 300평, 400평, 또는 150평을 한 마지기로 한다. 지방마다 다른 평수의 넓이를 쓴다.

지금은 300평 한 단보를 한 마지기로 하는 곳이 많다. 300평이 한 마지기이고 3000평은 일정이라고 한다.

계랑단위가 되면서 한 마지기는 일 a이고 약 990평방미터다. 일정은 일 ha이고 약9900평방미터다.

 

 

그런가 하면 부지땅이 하나 꽂을 땅이 없다는 말도 있다.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다는 말도 있다.

내가 오늘 본 땅보다 작은 땅이다.

부지땅은 전라도 말로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부지깽이라는 작은 나무 작대기나 쇠 작대기를 이르는 말이다. 부지깽이나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다는 말은 땅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아주 가난하다는 말을 이르는 말이다.

 

저 땅에 고추를 심은 사람도 도시생활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쩌면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땅에 고추 한 그루를 심어 액세서리 같은 밭을 만들어놓고 매일매일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정성스레 가꾸는 분의 마음이 맑고 푸른 하늘처럼,

내 마음에 고움으로 스며든다.

 

정성으로 작은 밭을 가꾸는 주인의 마음이라도 알기나 한듯 생명 없는 전주도 바람을 막아주고, 키가 큰 나무도 그늘을 다른데로 놓아놓고 큰뿌리로 뽑아올리는 물도 고추에게 나누어줄 것 남기고  뽑아올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