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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정하선 2015. 4. 7. 07:16

  미인도

              정하선

 

내 지갑은 다이어트를 너무 잘하여 날씬하기는 하지만, 사랑을 받기에 아양이 너무 없다. 이마가 훤칠하고 코가 둥그런 명예를 보면 젖가슴을 살짝 내비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개기름 번질 한 권력을 보면 치맛자락 살짝 비집어 다리 빌빌 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내 동창 놀뺑이, 복쟁이 같은 놀뺑이 여사는 , 어떻게 하여 뚱뚱보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갑도 살이 통통 쪄서 물에 빠진 송장 뜯어먹은 것 같은, 명예와 권력과 부를 바다로 알고 헤엄치다 한여름 물에 빠져죽어 여드레 만에 건져놓은 것 같은 꼬락서니 하고 있지만, 쉬파리가 드글드글 끌 것 같지만, 너무 짜게 간이 배여 쉬파리도 오지 않는 꼬락서니 하고 있지만, 호텔이나 백화점이나 어디에 가나 자기에게 모두 정다운 눈길을 준다고, 말까지 잔뜩 살쪄가고 있지만,

 

내가 호텔에 가면 파리새끼 하나 쳐다보지 않고, 내가 백화점에 가면 안내원도 쳐다보지 않고, 어쩐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건 내가 못생긴 것도 아닌데 더불어 내 지갑까지 다이어트를 잘해서 모든 것이 날씬하게 잘 어울려 있는데, 뚱뚱보만 이 세상 제일 미인으로 알고 흠모하는 눈길을 듬뿍 쏟아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백성들을 97호짜리 화폭에 다 그리기엔.

주 97호; 97년에 씀

놀뺑이; 놀부와 뺑덕어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