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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정하선 2015. 11. 18. 08:13

    사슴

 

                         정하선

 

 

뿔이 없어 다행이로다. 머리에 이고 있는

향기롭고 잘생긴 뿔이 없어 다행이로다

내 머리에도 너처럼 뿔이 있었다면

그 뿔로 인해 철망에 갇히었으리

그 뿔로 인해 머리에 피를 쏟았으리

꽃무늬 옷을 입었으면 무엇 하리

불어온 바람이 속옷을 들추어내는 걸

마취총 한 방에 쓰러져

뿔이 잘리면서도 피를 흘리면서도

한번 재대로 울어보지도 못하고

먼 하늘 아래 있었던 것 같은 아슴푸레한

기억을 마른 콩깍지에 섞어 씹다가

철망 안을 빙빙 돌다가 그저 하루 종일

 

정하선시집 - 무지개창살이 있는 (예지북스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