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정하선
국화가, 국화가 피어있다
송이송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황국은 황국끼리 백국은 백국끼리
기억은 검은색 동굴보다 깊어
국화는 심어준 사람을 모른다
서로의 색깔을 뽐내며 렌즈 앞에 서서
모델이 되려고 모가지를 뺄 뿐
염라대왕의 후궁들이 오줌을 쌌던 자리
지린내 사이로 뿌리를 뻗어
검고도 굵은 잎을 추켜들고 있다
지금은 해가 길어서 해가 길어서
검은 차광 망으로 하늘을 가린 후에야 핀
국화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국화 앞 가득
향기롭다고 소리쳐도 어쩐 일인지
나비는 오지를 않는다.
정하선시집-무지개창살이 있는 감옥(예지북스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