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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추억

정하선 2016. 2. 8. 13:09

    설 추억

 

                  정하선

 

 

 

제일 반가운 명절이 설이었다, 예전에는.

설이 되면 어른아이 구별 없이 새 옷을 지어입거나 사 입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새 옷을 입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었다. 내년까지 입으라고 몸에 맞지 않게 큰 옷을 사주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설이 되면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을 기르는 시루를 방에 들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물만 먹고도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은 소복하게 올라오고 신기하게도 잘도 자랐다. 물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노란 콩나물은 손으로 살짝 쓸어보고 싶도록 귀엽게 소복이 올라와 있었다.

콩을 맷돌에 갈고 바닷물을 길어다 두부를 만들었다. 두부를 끓일 때 순두부가 흰 구름처럼 몽실몽실 둥둥 떠오르면 할머니는 뜨끈뜨끈한 구름을 한 바가지씩 떠주면서 먹으라고 주었다. 구름은 바로 살로 갈 것 같았다.

조청을 고고, 그 조청 맛, 조청은 첫사랑 애인의 혀보다 더 달콤한 맛이라고해야 할까. 아직 어려서 첫사랑이 뭔지는 몰랐지만. 가래떡을 뽑아다 썰어서 떡국을 끓일 떡국떡을 만들었다.

돼지를 잡아서 몇 근씩 나누어 사다가 전·적 감을 만들고 배추김치와 돼지고기를 뚬벅뚬벅 썰어 넣어 국을 끓여먹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끓인 돼지고기 김치국을 좋아한다. 돼지를 잡으면 오줌보를 불어서 공차기 놀이를 하는 것도 재미중의 재미였다.

평소에 입기 어려운 새 옷에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일 년 중 최고로 좋은 명절일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야 명절 좀 안 돌아왔으면 하는 말을 할 정도로 없는 살림에 힘들었겠지만.

그믐날 저녁에는 물을 데워서 겨우내 낀 때를 씻어내고 밀어내었다. 손등이나 발등, 무릎 팔꿈치 등에 낀 때는 잘 벗겨지지 않으면 쌀겨를 문질러 벗겨내기도 했다. 쇠죽솥 물로 때를 베끼면 따뜻하고 춥지 않아서 좋았다. 소는 큰 눈을 뜨고 내 밥에 왜 때를 넣어 하는 듯, 하였지만 눈만 껌벅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 옷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에게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냈다.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의 구절처럼 작은 집 사람들은 등불을 잡고 큰 집으로 모여서 세배를 하고 함께 차례를 지냈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좋았지만 어른들이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아껴두었던 지전을 꺼내주는, 세뱃돈 받는 재미가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설 선물이었다.

차례가 끝나면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산소에 성묘를 가는데, 성묘를 갈 때는 대소가 분들이 거의 모여서 함께 성묘를 갔다. 설날 아침결에 보면 성묘하려 가는 사람들이 산 여기도저기도 보였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가기에 더욱더 눈에 띄는 풍경이었다. 어쩔 땐 하얀 학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듯도 보였다.

성묘가 끝나면 가까운 대소가 어른께 세배를 하고 상갓집 영위에 들려 고인께 절을 하고 상주에게 세배를 하는 걸로 초하루를 보냈다. 가는 집 마다 음식을 내오므로 하루 종일 떡국을 몇 그릇씩 먹는지 몰랐다.

세배가 다 끝나면 모여서 저녁 늦도록 화투놀이나 윷놀이를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보냈다. 초이튿날 초사흘 날은 먼 친척집이나 성씨가 다른 집에 세배를 다녔다. 세배를 다니다 많은 사람이 어울리면 역시 화투놀이나 윷놀이로 시끌벅적하였다. 초닷새 경이 되면 이웃마을 어른들에게까지 세배는 거의 끝이 난다.

낮에는 연날리기를 하거나 팽이치기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오후가 되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잡귀를 쫓아내고 복이 오기를 비는 매구를 치기 시작한다. 고깔모자에 오색 띠를 두르고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치는 모습도 흥겹고 좋았지만 벅구를 들고 개인 장기자랑을 하는 것은 한없이 보고 있어도 다시 보고 싶은 놀이였다. 마당에는 덕석을 펴놓고 음식상을 차려놓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놀이를 하기에 더 흥겨웠으리라.

여인들은 마당이 넓은 집에 모여서 강강술래를 하면서 정월보름까지 밤낮을 즐기며 놀았다. 우리 집 마당이 넓어 주로 우리 집에 모여서 정월을 보냈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보리밭에 비료를 하고 흙을 넣어주어 북을 하는 농사일이 시작되었다. 보름이 지나면서부터는 낮에는 모임이 줄어들고 밤이면 모여서 노는 걸로 점차 바뀌어 갔다.

처녀들과 새댁들이 농지기 고운 옷 꺼내 입고 서로 손잡고 이삼십 명씩 모여 마당을 뛰어 돌면서 주거니 받거니 선소리를 하고 후렴으로 강강술래를 하면서 돌던 모습이 지금도 머리에 삼삼하다. 엉덩이까지 땋은 머리와 색색이 곱던 치맛자락 훨훨 날리며 망아지처럼 뛰던 그 모습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그리움이 가끔 마음속에서 여울진다. 그 처녀들 다 어디에서 곱게 살고 있는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설 풍속도이지만 아직 머릿속에서는 그리운 그림으로 곱게 색칠되어 남아 있는 설 풍속도다.

설을 기점으로 한 달을 보내는 옛날을 재현하는 시골마을이 생긴다면 아마 좋은 문화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