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
정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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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몰고, 지나온
과거의 고개를 넘는다, 차디찬
아이는 소가 없었다
기억 자 흰 할무니가 빌려놓은
소를 몰고 왔다
소 주인은 ‘막걸리 사다 먹여서 부려라’
마루위에 서서 말했다
마구간에서 소를 몰고 나오는 아이를 보면서
그 집 아이는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고
아이는 쟁기를 짊어지고 소를 몰고 논으로 왔다
쟁기질 해줄 사람을 기다리기 한 참
쟁기질 해줄 사람이 와서 쟁기질을 시작하면
아이는 주막에 가서 막걸리 두 되를 사왔다
한 되는 대두병에 담긴 채로
소의 입에 거꾸로 넣어 소에게 먹였다
한 되는 쟁기질꾼의 새참이다
아이는 오전오후 두 차례 막걸리를 사왔다
대두병 두 개씩 사왔다
아이는 풀을 두 짐 베어야 했다
한 짐은 밥솥에 쇠죽 쑤어 소의 점심으로
한 짐은 소 주인집에 져다주었다
쇠죽 쑬 나무도 한 짐 져다주었다
아이는 세 살 때
여순반란사건 진압대의 양민학살로
죄 없는 아부지를 잃었다
아이가 열 살 때 엄니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갔다
여든이 넘은 허리 굽은 할무니와 노망기 있는 하내와
두 살 어린 여동생,
소를 하루 빌려온 대가로 이틀 등짐을 해주어야했다
쟁기질꾼 하루 쟁기질 해준 대가로 이틀 일을 해주어야했다
아이는 그렇게 노동에 취해서
평생을 노동에 취해서
차디찬 고개를 넘고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