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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정하선 2016. 11. 19. 07:31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 

 

                                   정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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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몰고, 지나온

과거의 고개를 넘는다, 차디찬

 

아이는 소가 없었다

기억 자 흰 할무니가 빌려놓은

소를 몰고 왔다

소 주인은 ‘막걸리 사다 먹여서 부려라’

마루위에 서서 말했다

마구간에서 소를 몰고 나오는 아이를 보면서

 

그 집 아이는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고

아이는 쟁기를 짊어지고 소를 몰고 논으로 왔다

 

쟁기질 해줄 사람을 기다리기 한 참

쟁기질 해줄 사람이 와서 쟁기질을 시작하면

아이는 주막에 가서 막걸리 두 되를 사왔다

 

한 되는 대두병에 담긴 채로

소의 입에 거꾸로 넣어 소에게 먹였다

한 되는 쟁기질꾼의 새참이다

아이는 오전오후 두 차례 막걸리를 사왔다

대두병 두 개씩 사왔다

 

아이는 풀을 두 짐 베어야 했다

한 짐은 밥솥에 쇠죽 쑤어 소의 점심으로

한 짐은 소 주인집에 져다주었다

쇠죽 쑬 나무도 한 짐 져다주었다

 

아이는 세 살 때

여순반란사건 진압대의 양민학살로

죄 없는 아부지를 잃었다

아이가 열 살 때 엄니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갔다

 

여든이 넘은 허리 굽은 할무니와 노망기 있는 하내와

두 살 어린 여동생,

 

소를 하루 빌려온 대가로 이틀 등짐을 해주어야했다

쟁기질꾼 하루 쟁기질 해준 대가로 이틀 일을 해주어야했다

아이는 그렇게 노동에 취해서

평생을 노동에 취해서

차디찬 고개를 넘고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