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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예찬

정하선 2017. 7. 23. 09:08

호박 예찬

 

                         정하선

 

 

 

새우를 넣어 끓인 풋호박국을 맛있게 먹으면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미국 어느 농촌마을의 호박축제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호박품평회, 호박공예, 호박으로 인형 만들기, 호박아가씨선발대회, 등등 화려하고 거창한 축제였다.

미국의 어느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소규모로 시작한 축제였는데, 지금은 전국각지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었단다. 주민들에게 많은 소득을 안겨주는 거창한 행사가 되었단다.

 

우리들은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을 흔히 한다. 나는 가끔 생각을 해본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면, 호박꽃은 꽃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 흔하게 있는, 너무나 흔해서 꽃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겠지만.

 

호박꽃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우선 크기로 본다면, 다른 그 어떤 꽃보다 크고 우아하다. 호박꽃보다 더 큰 꽃이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아직 호박꽃보다 더 큰 꽃은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호박꽃의 색깔 또한 아름답다. 풍만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보기만 하여도 귀품 있게 느껴진다. 노란색의 귀부인 통치마 같은 꽃이다.

그 속에 촛대처럼 서있는 꽃술. 흡사 꽃으로 등을 만들어 황촉을 한 자루 꽂아놓은 것 같다.

호박꽃을 보면 황촉불 밝힌 신혼의 방처럼 따뜻함이 느껴진다. 향기로운 행복감이 저절로 가슴에 스며든다.

먼 곳에서 호박벌이 윙윙거리며 찾아온다. 신방에 드는 것처럼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있다. 황촉불 켜진 방으로 날개 접어 들어간다. 향 가득한 꿀과 꽃가루를 한 짐 짊어지고 나오는 모양이 마치 음식 흐드러진 잔치집에서 큰 대접을 받고, 한 보따리 싸주는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지난 밤 숙면으로 잠을 잘 자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아침, 호박꽃을 보면 보드라운 연초록풀잎 끝에 맺힌 이슬 같은 여신이 잘 생긴 남성과 만나는 밤, 은은히 무드를 잡기위해 침실 머리맡 황촉에 갓 씌워 매달았던 꽃등을 보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매를 한 번 살펴보자. 수박이나 사과는 열매는 크고 맛이 있지만 그렇다고 꽃이 화려하고 큰 것은 아니다. 장미나 모란 연꽃등은 꽃은 크고 화려하여도 열매는 크지도 않고 호박처럼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이 무심히 보아 넘겨서 그렇지 식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이 화려하고 볼품이 있으면 과일이 볼품이 없거나, 열매가 크고 풍성한 과일나무나 과채류는 그 꽃이 빈약한 것이 대부분이다.

호박은 꽃도 크고 우아하다. 향기도 좋다. 열매 또한 이 세상에 그 어떤 과일이나 과채류보다 더 크다. 또한 맛이 있다. 호박하면 보름달 같은 넉넉함이 바로 떠오른다. 얼굴이 동그랗고 적당히 살이 찐 큰어머니나 큰누님의 후덕한 모습이다. 또는 이런 생각도 슬며시 떠올라 볼에 웃음을 물게 한다, 다복솔 밑에서 볼일 보는 여인의 엉덩이처럼 복스럽게 생겼다는 느낌이다.

고산 윤선도님의 시를 차용한다면 꽃과 열매가 다 같이 크고 덕스러운 건 너 밖에 없노라 할 것 같다.

열매도 좋고 꽃도 좋은 것이 호박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앞서 말한 미국의 호박축제에 나온 호박 중에는 240kg이나 나가는 거대한 열매도 있다고 한다. 그 꽃 또한 얼마나 크고 아름다웠을까 상상을 하여보자. 호박꽃도 꽃이냐고 했던 입이 저절로 벌어져 턱이 아물리지 않을 것이다. 그 입에서 호박꽃은 이 세상 꽃 중의 꽃의 왕이다, 라고 한 서른 번쯤 크게 외쳐야 턱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박은 쓰임새도 다양하다. 식용은 물론이지만 약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식용 중에는 호박나물에 이빨 자랑한다는 말이 있는, 부드럽기로 으뜸가는 풋호박나물, 호박전, 호박국, 등이 있다. 익은 호박을 주로 사용하는 호박죽, 호박떡, 호박식혜를 비롯하여 요사이는 호박김치까지 개발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다른 나물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특히나 호박나물은 아주 좋아하는 나물중의 하나다. 호박떡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음식이다.

식용으로 쓰임새는 여기서 말을 더 보태보아야 수염 끝에 묻은 음식물처럼 거추장스럽기만 할 것이다.

약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부기를 빼 주는 작용이 있어서 아기를 출산한 산모에게 많이 쓰인다. 이뇨작용이 있어서 소변이 원활하지 못하는 사람이 먹으면 소변이 시원해진다. 비타민이 많고, 특히나 비타민A가 많아 눈에 좋단다. 다른 약제와 같이 달이면 약을 먹기가 부드럽고 부인병에는 효과가 월등히 높아진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내가 한약사가 아니어서 효능을 더 많이 알고 있지 못해 이 정도로 줄이는 것이 예의가 될 것 같다.

 

일화 한 가지를 써 본다. 먼 곳에 사시는 친척 아저씨 한 분이 오랫동안 많이 아프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을 갔다. 전어회를 잡수시고 병이 나셨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비브리오라고 하였단다.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이나 드시라고 하면서 퇴원을 시켰다고 하였다.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는데,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하니 부기에는 호박을 먹으면 부기가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혹시나 하고 호박을 계속 삶아서 드셨더니 부기가 점점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더란다. 6개월 정도 호박을 계속 삶아 드셨다고 하였다. 우리가 병문안을 갔을 때는 거의 완쾌되었다고 마당을 거닐고 계셨다. 그렇게 호박을 계속 드시고 완쾌가 되셨다.

 

호박은 아무 곳이나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습기가 많은 저지대나, 습기가 적은 언덕이나 산비탈에서도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음지나 양지도 가리지 않는다. 썩은 울타리나 지붕 등, 낮은 곳 높은 곳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 잡초와 어울려서도 넝쿨을 쑥쑥 뻗어나간다. 나무와 어울려서도 곧잘 타고 오른다. 가시나무와 어울려도 불평이란 없다. 하지만 일 년 살이 초본식물이기 때문에 나무에 큰 피해는 주지 않는다.

시골에 가면 울타리에 장미꽃은 별로 없어도 호박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호박이 울타리에 열려있으면 주인도 따다 먹지만 지나는 마을 주민이 풋호박 한 개쯤 따가고, 호박 하나 따 왔네, 하면 그래 잘 했네, 하는 것이 바로 호박이다. 도시의 아파트 옆을 지나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울타리에 어우러진 장미다. 장미가 활짝 핀 모양도 보기가 좋지만, 호박을 심어 흐드러진 다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가끔 해본다.

 

사람들이 본받아야할 강인한 생명력이고 인심이다. 어울려 살아가는 덕목중의 덕목이다.

다만 가까이에, 흔하게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얕잡아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됨을 비천하게 만드는 일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함과 또한 무엇이 다를 것인가.

가까이 있어서 잊고 있었던 것들의 진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점검하여보는 덕목을 길러서 호박처럼 후덕한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면.

201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