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강
외 2편
정하선
가을 강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늘이 저리 깊이도 들어와
강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구나
잔물결 아래 흰 구름 흐르고
솔개 한 마리 맴을 도는데
어느 단풍계곡 구경들 가는지
피라미 떼 흰 구름 탄다
날더러 같이 가자 눈짓을 한다
거미
이력서를 쓴다
본적과
현주소를
하늘과 땅에 걸쳐놓고
줄줄이 빈 길을
걸어온 길을
펜으로 그린다
그려도 그려도
칸칸이 빈 칸을
다리가 휘청거린다
헛기침 하나에
이슬방울 하나에
매달려야한다
거꾸로 서라면 거꾸로 서고
옆으로 서라면 옆으로 서고
지금은 숨을 죽인 채
날쌘 찬스를 기다리자
이슬방울 하나일지라도
빈
보름달
묘비명
내 이름 이미 돌로 굳어
천년인들 못 기다리오리
만년인들 못 기다리오리
좋은 세상 오래오래 살으시다
그대 살기 싫도록 살으시다
살기 싫다고 생각될 때 그때쯤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살으시다
그때에 오셔도 삭아가는 내 손톱 끝만큼도
왜 이리 늦게 오셨냐 서운한 말 않으오리
때로는 세상살이 힘들어
내 무덤 찾아오시는 날
어깨라도 다독거려주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돌려보냄은
내 그대 이미 잊어서가 아니고
일어나 눈물 한 방울 닦아줄 수 없어서
없어서일 뿐이오니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좋단 말
차가운 돌이 되어보지 않고는 모르리
가슴가득 눈물 흘리며 살아도
그렇게라도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목화송이 같은 행복이 아니겠소
그대 살기 싫도록 오래오래 살으시다
그때 오셔도
왜 이리 늦게 오셨느냐 서운한 말 않으오리다
정하선 시집 <재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