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
외 2편
정하선
틀림없이 떫은 감일 거야
모양은 저래도
이사 온 첫해 가을
검으면서도 달디 단 육질
사근사근한 바람기들이
나의 혀를 유혹했다
1월 평균 기온 영하5C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
따뜻한 남해안에서만 산다는 단감나무가
여기에도 있다니
딱딱하게 굳은 내 관념의 껍질을 벗겨준
추상적인 내 사고의 몸통을
구체적으로 쪼개는 방법을 알려준
해 설핏하면 귀를 베어가는 바람이
옷섶을 풀어헤치고 따뜻한 삶을 가로막는
서울의 아파트 앞에 당당히
내 키 두 질도 훨씬 넘게 자라 가지와 의지를 힘차게 뻗어
잘 익은 열매를 매달아 등 따뜻한 가을을
표현하고 있는
단감이 익어가는 남쪽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참새 몇 마리 고개를 까닥 거린다
윤기 흐르는 나뭇잎 사이에서
마부
경주를 한다
희로애락을 짐 꾸려
생노병사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싣고
운명을 넣은 종지를
손바닥 덮어 감싸 쥐고
해에 한 번 두들겨 옆으로 흔들고
달에 한 번 두들겨 옆으로 흔들고
푸른 하늘에 한 번 더 두들겨 옆으로 흔들어
하느님도 비리 없음을 표현하고
하느님도 종지 속 알 수 없을 때
내가 탄 말이 갈 여정을 점지해 주는
괘가 든 네 조각 나무토막을 이 땅에 던진다
내가 가는 길 모를 내려주기를 바라지만
하느님도 모든 사람에게 모를 주고 싶겠지만
눈이 감기도록 웃으며 나타나는 모나
이빨 하얗게 쏟아지도록 웃으며 나타나는 윳은
항상 내 것이 아니고
이빨 서넛 살짝 드러내고 웃는 걸이라도 바랐지만
나에겐 항상 도나 개뿐
이 길거리에서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고비와 채찍을 파는 가게를 찾기는
더더욱 어렵고
NG 모음
고양이와 집오리가 tv를 본다
ng 모음
고양이가 tv에 나온다
물고기 덮치려다 물에 빠져 훔뻑
두 손 파닥파닥 겨우 기어 나온다
집오리가 웃는다 배꼽 없이 웃는다
날개 털어가며 웃는다 한없이 웃는다
고양이의 실수가 하루 종일 우습다
집오리가 tv에 비춰진다, 몰래카메라에
얼떨결에 뒤뚱뒤뚱 뛰어나온 집오리
날개 퍼덕여도 날지 못 한다
집오리의 날개는 실수
뒤뚱뒤뚱 평생 ng만 그리면서 살았어도
오리는 오리의 ng로 웃어본 일이 없다
정하선 시집 -재회_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