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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단감 외 2편

정하선 2020. 3. 13. 21:36

    단감

             외 2편

                             정하선

 

 

틀림없이 떫은 감일 거야

모양은 저래도

이사 온 첫해 가을

 

검으면서도 달디 단 육질

사근사근한 바람기들이

나의 혀를 유혹했다

 

1월 평균 기온 영하5C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

따뜻한 남해안에서만 산다는 단감나무가

여기에도 있다니

 

딱딱하게 굳은 내 관념의 껍질을 벗겨준

추상적인 내 사고의 몸통을

구체적으로 쪼개는 방법을 알려준

 

해 설핏하면 귀를 베어가는 바람이

옷섶을 풀어헤치고 따뜻한 삶을 가로막는

서울의 아파트 앞에 당당히

 

내 키 두 질도 훨씬 넘게 자라 가지와 의지를 힘차게 뻗어

잘 익은 열매를 매달아 등 따뜻한 가을을

표현하고 있는

 

단감이 익어가는 남쪽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참새 몇 마리 고개를 까닥 거린다

윤기 흐르는 나뭇잎 사이에서

 

 

     마부

 

 

경주를 한다

희로애락을 짐 꾸려

생노병사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싣고

 

운명을 넣은 종지를

손바닥 덮어 감싸 쥐고

해에 한 번 두들겨 옆으로 흔들고

달에 한 번 두들겨 옆으로 흔들고

푸른 하늘에 한 번 더 두들겨 옆으로 흔들어

하느님도 비리 없음을 표현하고

하느님도 종지 속 알 수 없을 때

내가 탄 말이 갈 여정을 점지해 주는

괘가 든 네 조각 나무토막을 이 땅에 던진다

 

내가 가는 길 모를 내려주기를 바라지만

하느님도 모든 사람에게 모를 주고 싶겠지만

눈이 감기도록 웃으며 나타나는 모나

이빨 하얗게 쏟아지도록 웃으며 나타나는 윳은

항상 내 것이 아니고

이빨 서넛 살짝 드러내고 웃는 걸이라도 바랐지만

나에겐 항상 도나 개뿐

 

이 길거리에서 내가 휘두를 수 있는

고비와 채찍을 파는 가게를 찾기는

더더욱 어렵고

 

 

    NG 모음

 

 

고양이와 집오리가 tv를 본다

ng 모음

 

고양이가 tv에 나온다

물고기 덮치려다 물에 빠져 훔뻑

두 손 파닥파닥 겨우 기어 나온다

집오리가 웃는다 배꼽 없이 웃는다

날개 털어가며 웃는다 한없이 웃는다

고양이의 실수가 하루 종일 우습다

 

집오리가 tv에 비춰진다, 몰래카메라에

얼떨결에 뒤뚱뒤뚱 뛰어나온 집오리

날개 퍼덕여도 날지 못 한다

집오리의 날개는 실수

 

뒤뚱뒤뚱 평생 ng만 그리면서 살았어도

오리는 오리의 ng로 웃어본 일이 없다

 

       정하선 시집 -재회_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