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정하선
고향에서 익은 감이 한 박스 왔다.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인데 해마다 이맘때면 감이나 농사지은 것을 부쳐주시는 분께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다. 잘 받았다는 인사 전화를 드리고, 박스를 열자 속에 단감이 반 박스 정도 들어있고 떫은 감이 반 박스 정도 들어있다. 팥과 검정콩이 비닐봉지에 담겨서 감 위에 놓여있었다.
단감은 부유와 차랑 이라는 품종의 감으로 맛이 잘 들었지만 떫은 감은 월하시인데 붉게 익긴 익었지만 홍시가 되려면 얼마쯤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시골서 감이 왔다. 와서 조금 갖다 먹어라.” 가까이 사는 딸에게 전화를 했다. 떫은 감을 좋아하는 딸이 오면서 사과를 한 봉지 사 가지고 왔다.
월하시를 하나 물에 씻어 먹었다. 아직 떫은맛이 강해 목이 칼칼하고 막히었다. 반이나 먹다 버렸다.
딸이 보고 있더니 플라스틱 밀폐용기에다 떫은 감을 몇 개 담고, 거기에 사과를 한 개 넣어두면서, 홍시가 빨리 될 것이라고 한다. 홍시가 된 후에 드시란다.
이·삼일 지나서 보니 홍시가 된 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떫은 감을 탈삽 시키려면 소주나 가스에 넣어두면 홍시가 되는 경험은 한 일이 있었으나 사과를 넣어서 홍시를 만드는 일은 처음 해보는 방법이다.
사과는 맛과 향이 좋은 본성을 가진 일등 과일인데 떫은맛을 가진 다른 과일과 함께 서너 밤을 보내자 다른 과일을 달게 만들어놓는 덕성도 가졌구나.
떫은 감이 탱자나 개살구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바뀌는 일이 많다.
정치인과 인연을 맺어 훌륭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여 대통령까지 되는 사람도 있다. 능력 있는 사업가와 만남으로 창업을 하여 대 성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큰 부잣집에 식모로 들어가서 성실하게 한 결과 그 부자가 길을 열어주어 잘 살게 된 사람도 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어울려야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 사귀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든가. 부자는 부자끼리 정치인은 정치인끼리 사업가는 사업가끼리 어울리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닌가.
맹자 어머니가 이사를 세 번 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인품이 좋은 부모를 만난 아이. 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사랑을 받은 학생. 어릴 때 좋은 친구와 어울린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본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사람과 어울리다 망쳐버린 인생길을 걷는 경우도 흔치 않은 세상이다.
떫은 감 같은 사람도 사과 같은 사람을 만나 함께 어울리면 향기롭고 달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기운을 받아 떫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달콤하고 향기로운 정신의 사람으로 변화가 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아름다운 인연이 되겠는가.
사과의 향기가 오늘은 더 상큼하다.
정하선 에세이집 (운과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