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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관리 아저씨

정하선 2020. 10. 24. 21:38

공원관리 아저씨

                                 정하선

키는 작고 몸은 왜소하여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모자를 깊이 눌러쓴. 헐렁한 점퍼에 운동화를 신은 남자.

2000년 겨울. 50년 만에 폭설이라고 한다. 90년 만에 최고로 많이 온 폭설이라고, tv에서 톱뉴스로 방송을 하던 겨울. 길은 꽁꽁 얼어 빙판 아닌 곳이 없었다. 길을 두껍게 덮은 빙판길은 여름이 되어도 녹지 않을 것 같았다. 차들은 더운 날 모래밭에 나온 거북이처럼 겨우 움직였다. 사람들은 길에 나서면 발에 온 신경을 다 집중시켜 걸어야 했다.

집사람은 눈길에서 넘어져 입은 골절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후유증으로 문밖에 나서면 빙판길이 무서워 벌벌 떨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는 집에서 걸어서 약 20분의 거리에 있다. 가게로 가는 골목길은 얼음으로 완전히 덮여있다. tv에서나 본 북극이다. 가게까지 걸어가는데 평소 20분이던 길이 30분으로 늘어났다.

가게로 가는 길엔 공원이 있다. 공원길은 지름길이다. 언제나처럼 지름길인 공원을 걷는데 곡괭이질을 하는 아저씨가 있다. 길에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을 곡괭이로 찍어 조금씩, 조금씩 쪼개어내고 있었다.

키는 작고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 처음 보는 아저씨다.

뒷날도, 뒷날도 저녁에 집으로 오는 길엔 하루에 사오 미터 정도의 길이 얼음이 치워져 사람이 다니기 편안한 길로 바뀌어갔다. 그러기를 며칠 공원길은 사람이 다니기 편하게 얼음이 다 치워진 길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원관리 아저씨가 바뀌었던 것이다.

예전에 공원관리 아저씨는 사람들이 화장실 드나드는 것.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것 등을 간섭만 하였지 공원관리 하는 것은 눈에 띄게 하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공원을 지나면서 보면 쓰레기가 널려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화장실 문 유리가 깨어져서 유리조각들이 널려있음에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져있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는 토사물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경일 때가 많았다.

얼음을 깨던 키가 작은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언제나 조용히 고쳐놓거나 치워놓아 공원이 항상 깨끗하여져 갔다.

여름에는 땀을 몹시 흘리면서도 쉬지도 않고 잔디를 깎고 나무 모양을 다듬었다. 가을엔 낙엽을 쓸고 월동준비를 했다. 낙엽을 쓸 때는 밟아도 보게 그냥 두는 것이 어쩌겠냐고 말을 하고도 싶을 때도 있었으나 너무나 정성을 들이고 있기에 말은 입에서 빙빙 돌고 나오지 않았다. 그분은 공원을 자신의 집처럼 가꾸어 쾌적한 안방 같은 곳으로 만드셨다. 자신이 할 일을 고봉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지나면서 진정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중히 인사를 하면 그분 또한 깍듯이 인사를 해주었다.

성실하게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알 수 없어서 추천을 할 수 없다.

2년 여가 지난 올 겨울엔 며칠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두셨나, 아니면 몸이라도 불편하여 안 보이시는가 궁금했다. 그러나 다행히 며칠 뒤 그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데도 사람의 눈을 끄는 사람. 외모가 그리 잘 생긴 편이 아니어도 사람의 눈을 끄는 사람. 진정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 바로 얼음을 치우던 공원관리 아저씨 같은 분이 아니었는가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삶에 충실하리라 믿는다. 항상 행복과 행운이 그분과 함께 하여주길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겨울 공원길을 걸어간다.

 

 

정하선 에세이집 (운과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화뭄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