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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정하선 2021. 1. 29. 21:16

 

연필

 

정하선

 

 

 

얼마나 생각을 두껍게 해야 향기롭게 해야

단단하고 반짝이는 심 하나 안을 수 있을까

사념의 겉 무늬를 깎아내고

결 곱다고 스스로 믿었던 가식을 깎아내고

굵고 또렷하게 남길 선 한 줄 그릴 수 있는

단단한 심의 중심을 찾아보지만

깎아도 깎아도 금방 부러지고 마는

어렸을 적 쇠필통에서 혼자

딸랑거리다 부러진 심처럼

어느 바람에 흔들리고 머리 부딪쳐

이처럼 부러진 속을 감추는

쓸모없는 생각의 비계층만 두꺼워졌는지

결 곱지 못한 살덩이가 되어있었는지

부러진 곳 없이 단단한 한 가닥 심이

어느 부분인가 아직 남아있으려니

내 결 고르지 못한 생각의 살덩이들

깎아내고 깎아내고 깎아내 보아도

한 가닥 단단한 심의 중심은 알 수 없어

 

 

 

정하선시집(재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