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정하선
얼마나 생각을 두껍게 해야 향기롭게 해야
단단하고 반짝이는 심 하나 안을 수 있을까
사념의 겉 무늬를 깎아내고
결 곱다고 스스로 믿었던 가식을 깎아내고
굵고 또렷하게 남길 선 한 줄 그릴 수 있는
단단한 심의 중심을 찾아보지만
깎아도 깎아도 금방 부러지고 마는
어렸을 적 쇠필통에서 혼자
딸랑거리다 부러진 심처럼
어느 바람에 흔들리고 머리 부딪쳐
이처럼 부러진 속을 감추는
쓸모없는 생각의 비계층만 두꺼워졌는지
결 곱지 못한 살덩이가 되어있었는지
부러진 곳 없이 단단한 한 가닥 심이
어느 부분인가 아직 남아있으려니
내 결 고르지 못한 생각의 살덩이들
깎아내고 깎아내고 깎아내 보아도
한 가닥 단단한 심의 중심은 알 수 없어
정하선시집(재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