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말하다
정하선
세한도
정하선
가려운
등 긁어 준
아내의 손이
소나무 한 그루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세한도의 탄생을 살펴본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전략 다툼에서 사약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으나 친구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을 겨우 면하고 제주로 귀양을 가게 된 추사 김정희.
외롭고 쓸쓸한 고된 유배생활 도중 목숨을 걸고 찾아와 준 제자는 소치 허유와 역관 이상적 뿐이었다.
소치 허유는 추사 유배 기간 중 두 번 찾아와 글씨를 배웠고, 역관 이상적은 중국에 역관으로 가 있으면서 구하기 어려운 서적을 오랜 시간 애써 구하여 멀고 먼 제주도까지 두 번이나 찾아가 전해드렸다.
위험한 세상 죽음을 마다 않고 스승과 제자의 도를 넘어 참 인간다움을 보여준 제자에게, 추사는 한 칸 초가에 갇혀버린 허름한 자신과 이상적의 변함없는 인품을 용비늘 소나무 한 그루로 그렸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공자의 말을 붙였다.
이 그림을 이상적에게 주었는데 이상적은 그 그림을 중국으로 가지고 가서 중국의 명 문장가들에게 보이고 원그림의 몇십 배에 이르는 찬사의 글을 덧붙였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어떻게 소장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일본 학자 후지스카 지카시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알고 소전 손재형 선생(전남 진도 출생 1902-1971 추사 김정희의 뒤를 이어 20세기 서예 최고의 거장)이 일본에 건너가 한 달간을 설득, 끈질기게 인수해줄 것을 요구 1945년 파란만장 우여곡절 끝에 국보 180호로 지정 보관하게 되었음을 여기 간단히 적는다.
어느 날 등이 가려워 아내에게 등을 긁어 달라 하였다. 가려운 곳 잘 찾아 등을 긁어 준 아내의 손이 마치 소나무 껍질 같이 거칠었다. 함께 살아오면서 좋은 일 궂은일 온갖 풍상 다 격어 소나무 껍질 같이 거칠어진 손, 하지만 길고 긴 세월 변치 않은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부부이긴 하지만 추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서 느낀 변함없는 사제지간의 정이 생각났다.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소나무 한 그루. 아내의 손과 뭐가 다른가.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어졌지만 변함없는 마음.
부부는 부부이면서 연인이고 연인이면서 스승과 제자이고 스승과 제자이면서 누님이나 어머니 같고 오빠나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세한도는 국보 180호다. 아내의 손은 국보는 아니라도 우리 집 가보 1호다. 내가 팔불출의 못난 놈이 되어도 좋다. 아내의 손이 없으면 우리 가족이 어찌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따뜻하게 살 수 있었겠는가.
처음 이 시를 썼을 때 이렇게 썼다.
가려운 등 긁어주는
당신의 손이
소나무 한 그루
그런데 민조시 가락에 맞추노라고 서두의 시로 약간 바꾸어서 개작을 하였다. 먼저 쓴 시보다 발표한 시가 음률에서 유연성이 조금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칠 수 있는.
정하선 에세이집 (견디며 사는 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