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em 제삿날 생각

정하선 2021. 10. 19. 19:31

 

제삿날 생각

 

                정하선

 

 

 

 

큰집에 제삿날, 음복 끝내고

마루에 나오신 아재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서서

하작에 뛰어다니는 불빛 가리키시며

저기 도깨비불 봐라 큰비 오려나 보다

 

 

밤중도 한 밤중

등불 잡은 아버지 뒤따라오던 밤

어둠에 묻힌 까마귀인 듯

보이지 않는 검은 귀신

내 뒷덜미 슬그머니 잡을 것만 같아

-얀 옷 입은 귀신 우뚝 설 것만 같아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다리가 땅에 얼어붙던 고갯길

왜놈이 혈 잘랐다는 구룡등 고갯길

밥 짓는 연기 마당에 깔리던 밤이면

진사댁 아이 낳다 죽은 새색시 귀신 아이 안고

푸르스름 불켜고 바느질하고 앉아있다던

차돌바위 넘고 나면

빳빳이 풀 먹여 다린 모시옷이라 해도

등허리 식은땀 아교칠 해 달라붙고

그래도, 손꼽았던 큰집에 제삿날

고모님 딸 예쁜 옥이가 오는 것도 오는 것이지만

 

 

 

     정하선시집(한 오백년. 월간문학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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