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삿날 생각
정하선
큰집에 제삿날, 음복 끝내고
마루에 나오신 아재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서서
하작에 뛰어다니는 불빛 가리키시며
저기 도깨비불 봐라 큰비 오려나 보다
밤중도 한 밤중
등불 잡은 아버지 뒤따라오던 밤
어둠에 묻힌 까마귀인 듯
보이지 않는 검은 귀신
내 뒷덜미 슬그머니 잡을 것만 같아
하-얀 옷 입은 귀신 우뚝 설 것만 같아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다리가 땅에 얼어붙던 고갯길
왜놈이 혈 잘랐다는 구룡등 고갯길
밥 짓는 연기 마당에 깔리던 밤이면
진사댁 아이 낳다 죽은 새색시 귀신 아이 안고
푸르스름 불켜고 바느질하고 앉아있다던
차돌바위 넘고 나면
빳빳이 풀 먹여 다린 모시옷이라 해도
등허리 식은땀 아교칠 해 달라붙고
그래도, 손꼽았던 큰집에 제삿날
고모님 딸 예쁜 옥이가 오는 것도 오는 것이지만
정하선시집(한 오백년. 월간문학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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