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정하선
1
때로는 지게작대기 삿대 삼아
먼 항해를 하고도 싶었다
때로는 등에 발대 날개 달아
높은 하늘 날고도 싶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걸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한다는 걸
배운 것 그 것 뿐이라
땅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걸
지게는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 등에 업고 부추겨 줄 때마다
하늘 높이 곧 날아오를 것 같아
춤을 추었지만 꿈을 꾸었지만
온 몸이 짓눌리도록
쇠풀이나 푸나무 지고 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속아속아 살아온 한 생
2
어느 날 농부가 경운기 들여온 뒤로
헛간에 버려두고 찾지 않을 때
그때야 지게는 알았다
온몸 짓눌리도록 지고 온 쇠풀이
소의 배를 따뜻하게 해주었다는 걸
온 몸 짓눌리도록 지고 온 푸나무
나뭇단 위에 꽂혀온 꽃 따라
나비가 춤추며 따라왔을 때
그때가 지게의 향기로운
풋풋한 시절이었다는 걸
지게는 그때야 알았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을 때
그늘진 헛간에 홀로 버려져 있을 때
정하선시집(한 오백년. 월간문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