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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em 지게

정하선 2021. 11. 5. 19:35

    지게

 

 

                   정하선

 

 

 

 

1

 

때로는 지게작대기 삿대 삼아

먼 항해를 하고도 싶었다

때로는 등에 발대 날개 달아

높은 하늘 날고도 싶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걸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한다는 걸

배운 것 그 것 뿐이라

땅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걸

지게는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 등에 업고 부추겨 줄 때마다

하늘 높이 곧 날아오를 것 같아

춤을 추었지만 꿈을 꾸었지만

온 몸이 짓눌리도록

쇠풀이나 푸나무 지고 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속아속아 살아온 한 생

 

 

2

 

어느 날 농부가 경운기 들여온 뒤로

헛간에 버려두고 찾지 않을 때

그때야 지게는 알았다

온몸 짓눌리도록 지고 온 쇠풀이

소의 배를 따뜻하게 해주었다는 걸

온 몸 짓눌리도록 지고 온 푸나무

나뭇단 위에 꽂혀온 꽃 따라

나비가 춤추며 따라왔을 때

그때가 지게의 향기로운

풋풋한 시절이었다는 걸

지게는 그때야 알았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을 때

그늘진 헛간에 홀로 버려져 있을 때

 

 

      정하선시집(한 오백년. 월간문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