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어음
정하선
하늘바래기 논 두어 마지기 가졌을 뿐
기름지고 파실파실한 밭뙈기 하나도 없는데
하느님이 주신 약속어음은 언제 갚아주실지, 비는
토란잎이 은전을 긁어모으며
은행원보다 반질거리는 얼굴을 하고
건너편 어느 집 밭에서도
들깻잎 차곡차곡 지전을 모으며
두터운 손으로 향긋한 정을 나누고
건너편 산 아래 언덕에서는
머리 빡빡 깎아버린 호박 두엇
고의춤 끌러놓고 앉아 크게 웃으며
뱃통을 득득 긁을 수 있도록
지금의 이 넉넉함이 어찌 우리 모두의 넉넉함이리
하느님이 주신 약속어음이 문제다
가끔가다 내리는 요즘 비는 너무 가늘다
가을은 아직 석 달이 남았습니다.
정하선 시집(재회)월간문학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