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宅 앞에서
정하선
돌담에 돌멩이도
얌전히 발 개어 앉아 있는
푸르른 듯 검은 기왓장
매무새 정갈하다
작은 헛기침으로 피어난 매화꽃송이
담장 위에 조용히 향기롭고
안채엔 결 고운 젊은 마님
난초 한 촉 화선지에 피워내고 있을까
병풍에 잉어 연꽃 물고나와
문창호지에 금빛 비늘 비벼 떨어뜨리고 있을까
사랑채 댓돌 위에 가지런한 신발 댓 켤레
뒤뜰엔 문인화로 선 소나무 대나무 몇 그루
불어오는 바람 시원한 웃음
지금 안마당 가득 햇살들 앉혀두고
대청마루 위엄 도사려 있을 것 같은데
무겁게 입 다물고 있던 대문이
오래된 말로 빙긋이 열리며
천년 촉촉한 이끼 한 장 살며시
푸르게 쥐어줄 것 같다 내 두 손 꼭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