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등 뒤에 두고
정하선
계양 무지개길(천천히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계양구의 일곱 군데 숲·생태, 자연, 문화, 역사, 체험길) 해설가 교육을 받으면서 넷째 날 목상동 길에 갔다.
교통편이 썩 좋은 곳은 아니다. 또 내가 오전 교육 끝나는 대로 바로 와야 하기에 차를 가지고 갔다. 평상시 40분 정도 거리는 걸어 다니고 전철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어서 차는 집에 거의 세워두는데 오늘은 차를 가지고 나오니 아내가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걱정을 해주었다. 내 서툰 운전 실력 때문이다. 일 년 내내 가만히 세워놓아도 보험료, 재산세, 환경부담금, 검사비, 등등 계산하면 백삼사십만 원은 그냥 나간다. 한 달에 십만 원 꼴인데 택시를 타고 다녀도 반에 반도 안 들어갈 것을 차를 못 없애고 있었는데 모처럼 쓴 것이다.
나이 먹어갈수록 차는 없애고 큰 집은 갖지 말라고 했는데......
노랑 대문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교육에 참여하였다.
계양산 남쪽부분은 거의가 다 계양 산업이 보유한 사유지이고 북쪽은 거의가 다 롯데그룹의 땅이라고 한다.
롯데가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했던 곳이라고 한다.
환경단체에서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을 하고 시민들 역시 반대를 하였기에 골프장 건설이 백지화된 곳이다.
사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단체의 반대나 시민들의 반대 효과도 컸겠지만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의 강력한 반대의사 때문에 백지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재벌들은 국민이나 시민이나 환경단체보다는 정치권을 무서워하는 것이 지금도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지 않은가.
강사로 오신 분은 환경단체의 회장이어서 그런지 유독 환경보호나 환경보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노랑 대문 집에서 조금 올라가니 쭉쭉 뻗어 자란 소나무 숲이 나왔다.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을 할 때 환경단체의 여자회원이 소나무 높은 곳에서 두 달인가 세 달인가 내려오지 않고 투쟁을 했다는 소나무는 그중에서도 굵은 걸로 세 그루가 삼각형으로 서있었다. 마치 투쟁의 의미를 후세에 오래오래 남기려는 듯 꼿꼿한 기개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기슭으로 올라가자 밭 같은 평지가 나왔다. 다른 곳 같으면 나무를 심었을만한 곳인데 골프장 건설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지 않고 묵혀두어서 칡덩굴이 덮고 우거져 덮고 있다고 한다. 마치 칡덩굴이 떼 지어 모여 앉아 외치는 반대의 함성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뻗어 오르고 있었다.
둘레길 코스를 돌아서 오는 가운데쯤에 개 사육장이 있다고 한다. 개는 숲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으나 개 짖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개 사육장 뒤쪽 편 마른 계곡에는 도롱뇽 서식지로 계양산에서 제일 많은 수의 도롱뇽이 있는 곳이라 하였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물이 없어서 볼 수는 없었다.
한 바퀴 돌아 나올 때쯤 계수나무 숲이 있었다. 숲에 들어서자 달콤한 향이 가득 고여 있다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교육에 참여하신 일행 중 한 분인 이 선생님이 예전에 다른데서 숲·해설가 교육을 받을 때 거기 오신 강사가 하는 말이 마른 계수나무 잎의 향을 ‘달콤한 첫사랑의 향내’라고 표현을 해서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 어쩜 그리도 아름답고 절묘하게 딱 떨어지는 표현을 생각하였는지 시를 쓰는 내가 들어도 훔쳐오고 싶은 표현이다.
한참을 계수나무 숲 향에 취해 있다가 첫사랑을 등 뒤에 두고 나오듯 아쉬운 마음을 두고 나오자 바로 연결된 곳이 하늘을 찌를 듯이 꼿꼿이 서서 청청한 기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소나무 숲에는 어느 유치원에서 왔는지 아이들이 열대여섯 뛰어놀고 있었다.
소나무와 소나무에 끈을 길게 묶어 줄을 치고 한 줄로 쭉 걸어놓은 유치원가방이 퍽 아름답고 신기하게 보였다. 길게 나란히 줄을 맞추어 걸어놓은 가방과 숲에서 아무런 간섭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감싸듯, 축하를 해주듯 소나무 사이로 내려온 화사한 햇살이 오색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천천히 걸어온 길은 목상동 길이고 바로 옆 계곡 들머리에는 다남동이다. 다남동은 남자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남자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는 의미로 지어져서 옛날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 다남동으로 일부러 이사를 온 사람들도 많았다 한다. 다남동에 많이 태어났다는 아이들이 지금도 온 나라에 많이 태어나서 방금 숲에서 본 유치원생들처럼 아름다운 숲에서 파릇파릇 뛰어노는 그런 아이 풍년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고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 귀갓길에 발을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