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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값

정하선 2020. 10. 3. 21:46

나이 값

                    정하선

아버지 제삿날이다.

정영감은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제수를 손수 마련하고 싶었다.

자식들이 시장을 봐 오겠다고 하였지만, 정영감은 굳이 할멈과 같이 시장을 보러 가겠다고 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차로 모시겠다고 사위가 차를 대령하였다. 마침 이날이 일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손주 녀석들 같이 태우고 나들이 겸 나섰다. 내친김에 서울에서 볼일도 볼 겸 중부시장으로 가자고 하였다.

 

 

볼일을 다 보고 오는 길. 연세대학 앞을 지나 행주대교로 진입하는 곳에 오니 차선이 한 선 줄어들었다. 정체가 되었다. 정영감이 탄 차는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그때 오른쪽 차선에서 차가 앞으로 끼어들었다. 정영감이 탄 차의 옆 부분을 스치며. 끼어들기 한 앞차 운전석에서 젊은 여자가 내리더니 차를 보면서 자기 차는 뒤쪽 옆 부분이고 정영감이 탄 차는 앞쪽 옆 부분이라고 하며 마치 뒤차가 앞서가는 자기차를 부딪쳤다는 투의 말을 했다.

정영감이 타고 있던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있던 정영감 사위가 내리며 무슨 소리를 하느냐 끼어들면서 차 옆구리를 문질러 놓고 되레 큰 소리냐고 하자 젊은 여자도 소리를 높이며 서로 옥신각신 하였다.

마침 순찰 나온 차가 옆 갓길에 있다가 이 광경을 보고 차를 갓길로 빼라고 하였다. 정영감 사위는 차의 위치표시를 하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순찰 나온 경찰은 끼어들기한 차의 위치와 방향을, 정영감이 탄 차의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게 바퀴 옆에 하얀 스프레이 페인트로 표를 하였다. 그리고 차를 옆으로 빼게 조치를 취했다. 차를 옆 갓길로 뺀 뒤, 경찰이 하는 말이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이니 서로 없었던 걸로 하고 그냥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끼어들기 한 여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하면서 마포경찰서로 대려다 달라고 하였다. 아마도 마포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는 듯한, 아니 형부라고 일부러 크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으니 마포경찰서에 형부가 있다는 듯한, 반 위협적인 전화였다. 도둑이 큰소리치는 것과 같은 여자의 태도에 정영감 사위 역시 가자고, 경찰서에 가서 해결하자고 조용히 얘기하던 말소리를 큰소리로 높였다.

경찰은 순찰차를 앞세우며 따라오라고 했다. 여자가 마포경찰서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느냐고 하자, 사고지점이 망운 2동 파출소와 가까워 그리로 간다고 하였다.

망운 2동 파출소에서 다시 서로의 사고 경위를 묻고, 상태를 살펴보던 경찰이 아주 경미한 사고인데 서로 없었던 걸로 하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지만 젊은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마포경찰서로 빨리 넘겨달라고만 하였다. 여태까지 경찰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던 정영감 사위도 이제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빽이 있는 모양인데 사고처리를 정확히 하여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담당경찰은 사고 경위를 더 자세히 물으며 일단 사고 상태 조사를 하여야 넘길 것 아니냐며 위치를 목격한 경찰에게 물었으나 이해가 안 가는지 직접 현장을 다녀온다고 나갔다.

젊은 여자가 운전하던 차에 같이 동승하고 있던, 젊은 여자 부모 같이 보이는 영감 내외와 아가씨 한 명이 같이 파출소에 들어와 곁에 서있었다.

정영감이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다가 젊은 여자 부모로 보이는 영감님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저 젊은 아주머니 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보아하니 따님 같은데, 저 애는 내 사위요.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것을 떠나서 큰 사고도 아니고 서로 별 피해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애들 타일러서 서로 없던 일로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조용히 말을 하자

“나는 모르겠소, 놔두시오 법대로 하게”

“그래요 나이 헛먹었구먼.”

정영감도 화가 나서 그만 입 다물고 돌아섰다.

 

 

얼마 후 그 여자의 형부라는 사람이 왔다.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는 정영감 사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정중히 고개 숙여 대신 사과하였다.

 

 

정하선 에세이집- 운과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이화문화출판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