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촌, 재개발지구에서 2
정하선
새로 생기는 아파트 단지
정리된 택지 옆을 흘러나가는
복개예정공사 팻말이 붙은
조그만 냇고랑 둑방길을 거닐다
버려진, 빈 드럼통 하나를 본다
커다란 몸통에 어울리지 않게
조그만 입을 벌리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평생 입 다물고 가슴속 깊이
가두었던 말들
무슨 말인가 자꾸만 하는 것도 같지만
복막염으로 손발이 싸늘히 식어가던
아저씨의 유언처럼, 내 귀로는 해독이 어렵다
얼음에 붙잡혀, 쉽게 떠내려갈 수도 없는 듯
며칠째 신음소리
신음소리 옆에 바퀴 빠진 세발자전거
떨어진 운동화짝, 함께 널려있는 어두운 냇고랑
감추지 못한 기억들 한 편씩을 내어놓고
곧 복개가 되면
그대로 묻힐 것인지 아니면 정리되어
어디론지 트럭에 실려가 묻혀 있다가
먼 훗날 오늘의 화석이 될는지
봄이 되면 바다로 떠내려가 맑은 물 가득 담고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산호숲자리 될는지
그러기보다는 고물장수의 눈에 띄어 또 다른
예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모습의 일생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둑방길 벗어나
새롭게 단장되어가는 길로 접어든다
곧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설
정하선시집 (재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