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맨발
정하선
곡식은 주인 발소리 듣고 자란단다.
아버지가 들에 나가시거나 흙 묻은 맨발로 들에서 들어오시는 것은 늘 있는 사소한 일이었으나 그 사소함이 진실로 진실을 여물게 하여 더 찬란한 더 따뜻한 빛이란 빛은 그 어디에서도 형용사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황금빛 가을을 우리 마당 가득 채워놓았으니
방아를 찧자 아버지의 발자국 같이 수도 셀 수 없는 왕겨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다 저 왕겨가 되었을까 거칠 대로 거칠어지고 발뒤꿈치 갈라져도 헝겊 배접으로 아픔을 감추시며 우리를 위해 평생을 걸으셨을
평생을 밟아온 발자국 걷어가시듯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는 왕겨.
정하선시집(새재역에서. 시산맥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