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f 2001
정하선
강간을 당한다
나는 지금
지하철 차 안에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놈에게
살인을 당한다
나는 지금
나의 심장을
나의 두개골을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꿰뚫는 놈
아무도 그놈을 본 사람 없다
증인을 서줄 사람도 없다
심장을 꿰뚫어도
두개골을 꿰뚫어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인가
나를 강간한 놈
나의 두개골을 뚫은 놈
그 놈이 옆 사람
휴대전화 속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는지
급히 들리는 비상 신호음
정하선시집 (무지개창살이 있는 감옥. 예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