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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

정하선 2021. 7. 31. 20:27

도리깨

 

 

                    정하선

 

 

 

 

 

 

춤을 춘다. 춤을 춘다, 도리깨가. 긴 장대 끝 낭창낭창한 손가락 펼쳐. 가을 하늘에 한 자락 떠있는 흰 구름을 휘저어 잡아 돌리려는 듯. 한바탕 크게 휘둘러 한가락 곡선을 그리다 아래로 힘주어 맵시 차게 접어내리는 춤사위를 보여주면서 춤을 춘다.

 

머리에 수건을 쓰거나 질끈 동여맨 이웃 아저씨 두 분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도리깨질을 한다.

마당에 넓게 깔려있는 무거지를*1 내려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 나락들이 떨어진다. 이제는 더 못 버티겠다는 듯이 움켜잡고 있는 줄기를 놓고 떨어진다. 섣부르게 맞으면 좀 더 버텨보자고 떼를 쓰며 떨어지지 않는다.

한 아저씨가 도리깨를 어깨 위로 높이 들어 올려 뒤로 젖히면, 다른 아저씨는 들어 올렸던 도리깨를 반동의 힘으로 강하게 내려친다. 땅에 깔려있던 무거지 더미가 한 대 강하게 얻어맞고 풀썩 튀어 오르다 다시 눕는다.

주거니 받거니, 도리깨를 내려친다. 한 분은 한 발 한 발 작은 걸음으로 뒤로 물러서면서 치고, 한 분은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친다. 물러서고 따라가고 물러서고 따라가고, 매기고 받으면서 서로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도리깨질을 한다.

서로 서있는 거리는 삼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지만 도리깨가 내려치는 자리는 앞사람이 친 자리 바로 옆을 치면서 빈틈없이 치고 나간다. 가운데를 칠 때는 바로 내려치고, 가장자리를 칠 때는 무거지가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도리깨를 옆으로 밀어 쳐 안쪽으로 몰아친다. 숙련된 노련한 솜씨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이 허, 어이 허, 때로는 훅훅 힘을 내 뱉으며 치기도 한다.

도리깨질은 힘이 무척 많이 드는 농사일이다. 자주자주 잠깐잠깐 쉬면서 막걸리 한 대접 쭉 들이켜 목을 축이고 힘을 돋우어 친다. 사람만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고 도리깨꼭지도 물에 적셔서 축여준다. 열을 식히고 말라서 부셔지기 쉬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람도 화가 많이 났을 때는 냉수 한 모금 마시면 열이 내려가게 된다.

막걸리가 적당히 들어가면 신이 오른 듯 도리깨 소리가 더 힘을 받는다. 도리깨 소리에 맞추어가면서 도리깨질을 한다.

어화 나간다. 힘들여 때려라. 어화 위로 쳐들고. 어화 힘껏 때려라. 어화 보리가 나간다. 어화 보리 보고 때려라. 가슨 모으고 번쩍 들어 때려라·····.’

일과 술과 소리. 마치 김치에 싼 홍어와 돼지고기의 삼합처럼. 피로를 잊기 위한 삼합이라고나 할까.

한바탕 치고는 도리깨 자루로 무거지를 뒤집는다.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바꾸어 펴고 다시 도리깨질을 한다. 두서너 번 뒤집어가면서 도리깨질을 한 뒤에는 나락이 다 떨어졌나? 살펴 확인을 한다. 나락이 다 떨어졌으면 검부저기를 걷어낸다. 걷어낸 검부저기는 소먹이로 쓰기 위해 한쪽에 잘 모아서 비 맞지 않게 날개*2로 덮어둔다. 떨어진 나락은 풍구질 하거나 바람에 드려서 먼지 등을 날려 보내고 알곡만 선별한다.

 

발로 밟으면, 대롱대롱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는 탈곡기로 나락을 탈곡할 때다. 알곡만 가려내기 위해서 탈곡기 앞에 쏟아진 나락을 갈퀴로 긁어 길게 뿌려 던지고, 그 위를 싸리 빗자루나 댓가지 빗자루로 살짝살짝 쓸어 빗겨내면 알곡만 등을 이루어 남고 거친 것들은 빗자루에 쓸려 뒤쪽으로 모아지게 된다. 이 거친 것들을 무거지 또는 묵지라고 한다. 무거지에 붙은 나락을 떨어내기 위해서 도리깨질을 하는 것이다. 간혹 탈곡 뒷날 도리깨질을 하기도 하지만, 품앗이 일로 바쁜 때라 모아놓은 무거지를 두지로 만들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을일이 끝나고 일이 없어질 때쯤 무거지를 치는 도리깨질을 한다.

위에서 본 풍경들은 내가 어렸을 때 본 풍경이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이웃 아저씨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루 일하면 품삯으로 쌀 한 되를 받던 때다. 그 마저 받지 않고 해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동네는 우리 집처럼 남자가 없어 벼 수확이나 모심기, 그밖에 농사일을 못하는 농가가 몇 집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품앗이 일이 끝나면 개인적으로나 공동 작업으로 남자가 없는 집의 일을 도와주곤 하였다. 때로는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달밤을 택하여 볏단을 지게로 져 들이는 일을 하여주기도 하였다. 한 마을 사람들이 이웃 간에 서로 정을 베풀며 살아가던, 정이 철철 넘치던 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어사전에서 도리깨를 찾아보면, 긴 장대 끝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꼭지를 박고, 그 꼭지에 회초리 같은 네댓 개의 나무를 묶어 만든, 도리깨 발을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매달아 보리, , , 녹두, , , 메밀 등 잡곡의 낱알을 떠는데 쓰는 농기구로 적혀있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은 평야지대로 밭농사보다는 논농사가 많아 주로 나락 무거지를 치는 데 사용했다. 도리깨로 무거지를 치기도 하지만 콩이나 메밀을 치기도 한다.

콩을 수확하여 동으로 묶어두었다가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이 맑고 좋은 날을 택하여 마당 가득 펴 말린다. 도리깨로 쳐서 알 콩을 털어낸다. 콩을 칠 때는, 도리깨에 맞은 콩이 아이코 무서워, 하고 멀리 튀어 달아나곤 한다. 마당 가장자리에 덕석이나 포장을 깔아 줍기 쉽게 한다. 콩 타작 역시 두어 번 뒤집어가면서 도리깨로 치고, 콩 대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거친 것들을 걷어내 보관한다. 콩깍지는 소가 좋아하고 소에게 영양가도 많으므로 소먹이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보관한다.

소를 기르지 않는 집에서는 콩깍지를 모아서 땔감으로 쓰면 좋았지만 땔감으로 쓰기보다는 소먹이로 쓰라며 소를 기르는 집에 주었다. 알 콩은 풍구로 부치거나 바람에 드려서 먼지나 찌꺼기를 걸러내고 깨끗이 하여 보관하였다가 메주를 쑤거나 콩나물을 기르거나 아니면, 두부나 콩가루를 만드는 등 식생활에 긴요하게 사용하였다. 메주나 두부나 콩나물은 콩이 도리깨에 맞아 자신들이 탄생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보리를 탈곡하는 타맥기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도리깨가 하는 일중에서 보리 치는 일이 제일 큰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리를 도리깨로 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타맥기로 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옛날 농기구 중에서도 나는 도리깨를 잊지 못한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었을 때다. 도리깨질을 배워 도리깨질을 한 때가 있었다.

도리깨질은 보기에는 쉬운 것 같아도 실제 해보면 참 어려운 일이다.

농사일 중에서 어려운 일은 소로 논갈이를 하는 쟁기질과 도리깨질이다. 질자가 따라붙는 일은 무척 힘이 들기도 하지만 또한 어렵기도 하다.

중부 이북 지방은 도리깨자루를 손으로 돌려가면서 친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도리께 발을 밑으로 해서 뒤로 돌려 바퀴 돌리듯 치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큰 기술이 필요한 것 같진 않았지만, 남부지방 도리깨질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남부지방 도리깨질은 도리깨 자루를 돌리지 않는다. 두 손으로 단단하게 움켜쥐고 어깨 위로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힘으로 도리깨 발이 뒤로 넘어가게 하였다가 뒤로 넘어간 도리깨 발이 앞으로 그대로 다시 넘어오게 한다. 반동의 힘을 이용하여 묵직하게 내려치기 때문에 곡식에 맞을 때는 아주 매게 맞는다. 뿐만 아니라 숙달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내가 도리깨질을 배울 때도 그랬다. 도리깨 발이 눕지 않고 꼿꼿이 선채로 먼저 땅에 곤두박질치는가 하면, 도리깨 꼭지가 먼저 땅에 맞아 도리깨가 부서지기가 다반사였다. 도리깨 꼭지가 먼저 땅에 닿으면 꼭지가 부러지고, 도리깨 발이 눕지 않고 꼿꼿이 서서 땅에 곤두박질치면 도리깨 발이 부러지기도 한다.

도리깨는 도리깨 전체를 여분으로 만들어두고 쓰기도 하였지만, 도리깨 발이나 꼭지는 더 많은 여분을 준비해 두어야 했다.

다른 농기구는 다 빌려주어도 도리깨는 잘 빌려주지 않는다. 농사에 긴요하게 써야 하는데, 잘 부서지는 특성상 빌려주었다가 부서지면 써야 할 때 못쓰기 때문이다.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거쳐야 채집한 재료로 도리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 역시 남의 도리깨를 빌려다 쓰면서 망가뜨려 부서진 채로 가져다 드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 그 미안함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누가 도리깨를 빌리러 오면 도리깨 여기 있네.’하고 자랑만 하고 빌려 주지는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도리깨를 비롯하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농기구를 빌리러 오면 보여주면서 자랑만 하고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돈을 주고 사서 써야 하는 농기구는 잘 빌려주었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농기구는 두말 않고 빌려주었지만, 자기 노력으로 만들어 쓸 수 있는 농기구는 게을러서 만들지 않고 빌리려 왔다고 빌려주지 않았다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 들으라고 하셨는지 모르지만 증조할아버지 얘기를 자주 해주셨다.

 

나는 도리깨질을 배우면서 도리깨 만드는 것도 함께 배웠다.

도리깨는 곧고 매끈한 긴 대나무 장대 끝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볼트 같은 나무 꼭지를 박는다. 그 꼭지에 회초리 같은 네댓 개의 도리깨 발을 매단다. 도리깨 발은 회초리 네댓 개를 마치 말린 오징어 다리 모양으로 펴서 엮고, 윗부분은 헝겊이나 삼끈 등으로 잘 감아 작은 구멍이 나게 만든다. 이렇게 만든 도리깨 발을 도리깨 꼭지에 꼭 끼워 넣어 빠져나가지 않게 대로 만든 대못이나 나무못을 박아 고정시킨다. 도리깨 자루는 어른 키 높이 정도나 아니면 조금 길어도 되고 조금 짧아도 된다. 손으로 쥐면 한 주먹 되는 크기의 대나무를 골라 쓴다. 곧은 대나무를 마디까지 매끈하게 만들기 위하여 낫을 옆으로 뉘어 손안에 잡고 마디에 낫 이를 대고 대나무를 빙빙 돌려서 다듬어 사용한다. 도리깨 꼭지는 밤나무나 탱자나무 등 단단하여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나무를 볼트나 비녀 모양으로 깎아 만든다. 도리깨 발은 꾸지뽕나무나 물오리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하고, 이삼 년 된 대나무의 맨 아래쪽 부분을 쪼개어 만들었으므로 그 재료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리깨 발은 그 어떤 나무보다 단단하고 질긴 나무로 만들었기에 수도 없이 내려쳐도 오래도록 부서지지도 않았지만, 도리깨질을 하면 상대방인 콩이나 보리, 나락 등이 반항하지 못하고 바로 까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도리깨질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갈 무렵, 콩이나 무거지도 타맥기에 넣어 탈곡을 하는 시대가 오고, 그 뒤로는 도리깨질을 해보지 못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 어렵고 힘들어서 더 잊지 못하는 그리움이 되었는가. 일생 중 가장 힘들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더라, 지나고 보니. 하는 말이 있는데 가끔 그때가 생각이 나고 도리깨질을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때가 젊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던가.

 

매기거니 받거니 신나게 도리깨질을 한 번 해보고 싶다.

 

*1 무거지; 벼 탈곡할 때 떨어져 나오는 줄기에 알곡이 조금씩 달린 벼 줄기의 찌꺼기

*2 날개; 이엉으로 쓰기 위해 볏짚을 엮어놓은 것을 날개라고 함

 

2012. 3.9

 

                           정하선에세이집 (운과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화문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