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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과 삿갓

정하선 2021. 8. 14. 21:08

우장과 삿갓

 

                      정하선

 

 

 

 

 

 

우장이란 말을 쓰신 것 보니 고향이 저 남쪽인가 봐요.”

예 해남이어요. 선생님은요.”

저는 고흥인데요. 지금 사람들 우장이 뭔지 알까요.”

시낭송 도중 옆에 앉은 분의 글 속에 우장이란 말이 쓰여 있어서 주고받은 말이다.

 

비가 왔다. 비가 많이 왔다. 마당에 물방울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방에서 나오니 할아버지가 마구 정제*1에 걸어두었던 우장을 꺼내서 입혀주셨다. 삿갓도 함께 씌워주셨다.

나는 우장을 입고 삿갓을 쓰고 학교에 갔다.

입학을 하고 첫 비 오는 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학교에 왔었다. 우산이나 비옷이 없어 비를 맞고 온 아이도 있었다. 마대자루를 한쪽 귀를 접어 넣어 챙이처럼*2 쓰고 온 아이도 몇 있었다.

나는 우장과 삿갓을 교실 뒤쪽에 벗어놓고 책상 의자에 앉았다.

저 애 꼭 고슴도치 같다.’ 하고 한 애가 말하자 모두들 나를 쳐다보고 웃었다.

우장을 쓰고 온 덕에 비 맞지 않아 추위에 떨지는 않았지만, 고슴도치 같다는 말에 창피해서 내 얼굴이 빨개졌다. 그 뒤로 아이들이 날 보면 고슴도치라고 어찌나 놀려대던지 내 별명을 고슴도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뒤 얼마 지나서 또 비가 왔다.

비 온다. 이것 쓰고 가거라.”

할아버지가 우장과 삿갓을 씌워주시려고 하셨다.

싫어요. 그냥 갈래요.”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뿌리치고 우장도 삿갓도 쓰지 않고 쪼록쪼록 비를 맞으며 학교에 갔다. 학교와의 거리는 약 5 . 그 거리를 비를 맞고 갔다. 가는 도중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고 하였으나 무슨 고집에서였는지 나는 싫다고 호의를 뿌리치고 비를 맞은 채 학교에 갔다.

옷은 흠뻑 젖었다. 하루 내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왔다. 집에 올 때도 비가 왔다. 아침처럼 많이는 오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옷은 또 젖었다.

입학하고 두 번째 비 오는 날이었다.

 

할머니가 갑바 우산을 하나 사다 주셨다. 대나무살에 군인들이 입는 비옷 천을 씌워서 만든 우산이다. 비닐 우산이나 지 우산(기름종이 우산) 보다는 더 비싸고 튼튼했으나, 쇠살로 만든 까만 박쥐 우산 보다는 값이 싸고 튼튼하지 못해서 비바람이 칠 때 잘 못 다루면 까지거나 부서지기 일쑤였다. 또한 비 온 뒤 간수를 잘 못하면 살과 살이 만나는 곳, 접고 펴는 곳이 썩기 쉬웠다.

나는 그 우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모른다. 비올 때 쓰고, 비가 개면 햇볕에 잘 말려서 보관을 하였다. 졸업 때까지 3년을 쓰고 다녔지만 거의 새 우산이나 다름없었다. 졸업 후에도 몇 년을 더 사용하였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 그 버릇이 남아있는가, 아니면 습관인가 헌 우산을 선뜻 버리지 못한다. 지금은 우산이 흔한 시대여서 집에 우산이 많이 있는데도 헌 우산을 고치고 또 고쳐서 쓰는 버릇이 남아있다. 좋은 버릇인지 아니면 청승을 떠는 꼴 보기 사나운 버릇인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였는데.

 

후에 농사를 지으면서 우장을 입어보니 조금 둔하기는 하여도 참 좋은 비옷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비 오는 날 모내기할 때는 비옷으로 아주 적격이었다. 우장을 입고 삿갓을 쓰고 작업을 하면 비에 젖지 않고, 바람도 들어오지 않아서 춥지도 않았다.

 

비 젖은 옷을 입고 하루 내내 추위에 떨면서 공부했던 오기는 있었지만

왜 우장과 삿갓을 쓰고 다닐 오기는 없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갑바 우산 하나 사는데, 사주어야지 하면서도 몇 번이나 빈주머니를 만지셨을까.

지금으로 말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조손가정의 할머니가 몇 십만 원 하는 패딩점퍼를 아이에게 사주는 것만큼 어려웠을 것인데.

 

*1. 마구 정제; 소를 기르는 사랑방 부엌

2. 챙이; 키의 전라도 지방 향토 어

* 나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여순반란사건 당시 양민학살 현장에서 무고하게 돌 아가셨다. 어머니는 내가 열 살 때 개가해 가셨다. 할아버지는 80세가 넘으셨고 할 머니는 70세가 넘은 연세였는데 여동생과 나를 길러주셨다.

*삿갓; 대나무를 아주 얇게 쪼개서 깔때기 모양으로 엮어 만들어 비올 때 머리에 쓰는 생활용품. 김삿갓이 쓰고 다녔던 삿갓.

*우장: 도롱이. 지방에 따라 만드는 재료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살았던 전라도 해안지방에서는 강가 갈대밭 사이에 나는 가늘고 질긴 짜부락이라는 풀을 베어다 말려서 가늘게 새끼를 꼬아 가로 세로로 엮어 안을 만들고, 겉에는 띠풀(삘기)이라 고 넓고 길게 생긴 줄풀을 베어다 잘 말려 촘촘하게 층층이 엮어 양 어깨에 걸어 입는 비옷이다.

*비올 때 우장만 입으면 머리와 목 부분이 젖어 몸속으로 물이 젖어들기 때문에 우장을 입고 삿갓을 썼다. 농사일을 할 때 주로 사용했으며 비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도 들어오지 않아 옷도 젖지 않고 춥지도 않았다. 우장을 입으면 마치 고슴도치 같아 보인다.

2012. 3. 25

 

                                 정하선 에세이집 (운과 귀인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화문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