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안경은 알이 없다
정하선
병아리 한 마리
어쩌다 갈색 옷 입었다
저 자식도 내 자식일까
내 자식도 내 자식이
아닐 때가 있다
같은 품속에 품어서
깨어 나오는 걸 보았는데도
내 암탉은 원통하게도
꿩알을 품은 것 같은 생각
어미도 어쩌다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한 번 살짝 쪼아본다
산부인과에서도 어쩌다
아이가 바뀐다는 소문
어쩌다 가끔
병아리도 고개를 갸우뚱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본다
노랑병아리도
세상은 자꾸만
터무니없이 밝은
안경 도수를 높인다
정하선시집(무지개 창살이 있는 감옥. 예지북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12시에, 출장명령을 받고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역에 내렸을 때 진한 태양이 이마를 짓누른다. 끈적끈적 배어나오는 진득진득한 하루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눈은 이미 감겨있고 구급차의 들것 위에 하얀 천, 점심시간 바로 전 중년의 여자는 텅 빈 식탁위에 하얀 식탁보를 놓쳐버린다, 빌딩이 고개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상여가 나가고, 갑자기 고요해진 동네엔 햇빛만 가득 하얀 시트를 씌우고, 낮닭이 울었다. 고개를 길게 빼고 적막은 더 깊어지고, 저녁녘 빈 상여만 상여집에 들고 자물쇠도 채워지지 않은 상여집에 들고 사람들은 문창마다 불을 밝힌다. 가족들 모두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핏자국이 검어지고, 사람들은 어둠을 피해 걸었다. 세상길은 밤에 묻히고 아무 일도 없었다 12시에, 모두들 돌아가 불을 켜고 가족과 따뜻한 밥을 먹고 TV에 개그맨이 나오면 방안 가득 웃음을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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