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정하선
담벼락 타고 오다 꺾어진 곳
허물어진 담벼락 밑에
辛라면 박스조각 찢어 깔고
앉아서 졸고 있는 노인
때 묻은 비단바지
포개어 앉은 양반자세
길모퉁이 돌아오는 사람
길모퉁이 돌아가는 사람
꼭꼭 숨기고 오가는 운명까지
흘러내리는 돋보기 너머로
훤히 살펴보면서도
돋보기 안에 든 인생은 모르고
손 때 묻어 구겨진
책장을 펼치면
또 떨어질 것 같다
바람만 불어도 담벼락 돌 한 장
가랑잎 아래 돋보기 하나
가랑잎 아래 노인
정하선시집(무지개 창살이 있는 가옥. 예지북스)
늙은 소
하얘지다 못해 누래진 머리
굽은 등, 앙상한 뼈
저 늙은 소
어께에 멍을 얹고 쟁기질을 나간다
저 소는 3000원짜리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3000원이면 밥을 먹지 왜
커피를 마시느냐고 순한 눈이 말을 한다
커피를 마시고는 일을 못하기 때문
밥을 먹어야 일을 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어께에 멍을 얹어본 적이 없는
송아지가 놀면서 매일 뛰놀면서
한 잔 10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외제차를 탄다
송아지는 그걸 당연지사로 알고 있다
늙은 소는 어께에 멍을 얹고
다리를 절뚝이며 쟁기질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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