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em 노인

정하선 2021. 9. 13. 20:32

 

노인

 

 

                  정하선

 

 

 

 

담벼락 타고 오다 꺾어진 곳

허물어진 담벼락 밑에

라면 박스조각 찢어 깔고

앉아서 졸고 있는 노인

때 묻은 비단바지

포개어 앉은 양반자세

 

길모퉁이 돌아오는 사람

길모퉁이 돌아가는 사람

꼭꼭 숨기고 오가는 운명까지

흘러내리는 돋보기 너머로

훤히 살펴보면서도

돋보기 안에 든 인생은 모르고

 

손 때 묻어 구겨진

책장을 펼치면

또 떨어질 것 같다

바람만 불어도 담벼락 돌 한 장

가랑잎 아래 돋보기 하나

가랑잎 아래 노인

 

 

                정하선시집(무지개 창살이 있는 가옥. 예지북스)

 

 

 

 

 

 

 

 

 

 

늙은 소

 

하얘지다 못해 누래진 머리

굽은 등, 앙상한 뼈

저 늙은 소

어께에 멍을 얹고 쟁기질을 나간다

저 소는 3000원짜리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3000원이면 밥을 먹지 왜

커피를 마시느냐고 순한 눈이 말을 한다

커피를 마시고는 일을 못하기 때문

밥을 먹어야 일을 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어께에 멍을 얹어본 적이 없는

송아지가 놀면서 매일 뛰놀면서

한 잔 10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외제차를 탄다

송아지는 그걸 당연지사로 알고 있다

 

늙은 소는 어께에 멍을 얹고

다리를 절뚝이며 쟁기질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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