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정하선
저렇게 제멋대로 누워 있지 않은가
저렇게 포개어 앉아 있지 않은가
화랑담배 연기 아직 자욱한 산골 안개
횃대에 저고리 걸어둔 채 능선에 흰 구름
사랑방에 때 묻은 목침 대신
녹슨 철모 베고 누워
흰 이빨 드러내고 하얗게 웃는 모습
원망은 이미 다 삭아 이끼 너그럽고
뼈와 손 서로 마주 잡은 채
너는 이어도 해녀의 이야기나 하다가
너는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나 하다가
금방이라도 소피 보러 가는 척
어린 마누라 기다리는 제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에 욱신거리는 허리 지지고
동트면 두엄 지게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갈, 채비로
끝내 누워버린 고지여, 고지여
정하선 시집(재회) 월간문학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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